공정위 '솜방망이' 처벌 논란…해외선 과장 안 해 '내수 차별'

현대-기아 (CG).연합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현대차와 기아차가 차량의 취급설명서에 비순정부품은 품질·성능이 떨어지고 사용에 부적합하다고 표시한 것에 대해 거짓·과장의 표시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경고’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차량은 그랜저, 소나타, K5, 제네시스 등 현대차 24종, 기아차 17종이다.

순정부품은 비순정부품보다 가격이 높아 소비자 부담이 더 크다. 한국자동차부품협회에 따르면 전방 범퍼의 경우 비순정부품의 가격은 순정부품 대비 대략 60% 정도다.

업계에서는 이들 기업이 여전히 일부 차종에 대해 지적된 표시를 고치지 않았는데도 공정위가 가장 낮은 수준의 제재인 경고 처분을 하면서 ‘봐주기’ 비판도 제기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두 회사는 전방 범퍼, 소모품(전구, 좌석시트, 카 매트, 에어클리너 필터 등) 같은 부품을 쓸 때 현대모비스에서 생산한 순정부품이 아니면 위험하다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과장ㆍ허위 광고를 한 혐의를 받는다. 이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안정성과 적합성은 순정·비순정 여부가 아니라 안전·성능 시험을 통과했는지, 국토교통부의 인증을 받았는지 여부로 결정된다”며 “이들의 차량 설명서는 소비자가 비순정부품 사용을 부적합한 것으로 오인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순정부품 생산을 주문자위탁생산(OEM) 방식으로 개별 부품 업체에 맡긴다. 비순정부품은 순정부품이 아닌 부품을 말하는데 이중에는 현대모비스에 납품을 하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도 있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부품이 순정·비순정부품으로 나뉜 것에 불과한데 차량 취급설명서에는 비순정부품은 위험하다고 적혀있다. 현대모비스에 납품하지 않는 부품 업체 중에서도 국토부로부터 순정부품과 품질이 유사하다고 인증 받은 곳이 많다. 국토부는 2020년 7월 기준 휀더, 본넷 등 120개 품목에 대해 이런 인증 제도를 운영한다.

두 업체가 거짓·과장 설명을 한 것도 문제지만 국내와 해외시장에서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순정부품을 쓰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표현 대신 ‘모조품이나 위조품, 불량품을 쓰면 성능이 떨어지거나 고장 날 수 있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시장에 들어온 수입차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순정 부품을 쓰지 않으면 수리 보증을 하지 않겠다’고 할 뿐 비순정부품을 쓸 때 고장의 우려가 있다고 표시하지는 않는다.

실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모조품이나 위조품을 쓰지 말라는 정도로 권고하는 게 국제적인 기준”이라며 “현대차는 막상 외국에선 외국의 기준을 따르고 국내에서만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조치와 관련 현대차·기아차는 “공정위 결정을 존중하며, 앞으로도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며 “공정위 조사 전 대부분 (시정) 조치를 했음에도 실수로 빠진 부분은 조속히 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제재 수위가 가장 낮은 ‘경고’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 제재로는 검찰 고발, 과징금 부과, 시정명령 사실 공표, 정정광고, 경고 등 순으로 제재가 가능한데 가장 낮은 단계의 처벌을 내렸기 때문이다. 과징금을 물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시정명령과 경고가 동일하지만 향후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경고에 비해 시정명령은 더 강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두 업체가 2018년 11월 이후 출시된 신차종의 취급설명서 해당 표시를 삭제했다는 것이 감경 사유로 반영된 것이지만 2018년 11월 이전 출시된 차종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가벼운 처벌이다.

팰리세이드, 스타렉스, 벨로스터 등 일부 차종의 경우 여전히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취급설명서에 문제로 지적된 표시 내용을 고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시정명령 조치를 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 사건을 다룬 소회의에서는 제재 수위에 대한 위원들 간 의견이 엇갈려 치열한 공방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공정위원장 등 9명이 모이는 전원회의에서 다뤄지지 않고 비교적 작은 사건을 다루는 소회의에 올라간 것도 논란거리다. 공정위는 심결을 위해 위원 전원(9명)으로 구성되는 ‘전원회의’와, 상임위원 1인을 포함한 위원 3인으로 구성되는 ‘소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공정거래 사건은 1심을 법원 대신 전원회의나 소회의에서 맡는다. 기업이 불복하면 2심인 고등법원으로 가는 구조다.

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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