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춘식 국회의원

"어린시절 포항시내에 살면서 중앙초등학교와 포항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고향은 '포항제철소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포항'입니다. 포철(지금의 포스코) 덕분에 고향 사람들의 생활은 조금 나아졌지만, 대신 불순물 하나없이 맑은 은빛 바다를 잃었고, 그 많던 형산강의 물고기도 확 줄었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송도바닷가의 송림(松林)에서 소나무 숲을 헤치고 술래잡기 하던 일, 고향의 젖줄인 형산강에서 조개를 캐던 일 등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글은 올해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이춘식(李春植·59·사진)의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기 소개서 앞 부분이다.

그는 MB(이명박 대통령)가 서울시장때 정무부시장을 지낸 골수(?) MB맨이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는 MB의 당선을 위해 온몸으로 뛰었던 측근중 측근이다.

대선에서는 800여명이나 되던 특보단(단장 권철현)의 부단장을 맡아 비선 조직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덕택에 그는 꿈에 그리던 금배지를 달았다.

그를 최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817호 그의 방에서 만났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 정국으로 MB호가 난항을 겪고 있어서 그런지 얼굴이 다소 어두워 보였다.

"요즘 정국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 아픕니다. 제2의 경제도약을 일으켜 보려는 대통령의 충정을 이해해 주지 못하니 말입니다.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 봐 잘 압니다. 대통령은 명석하고 강인할 뿐 아니라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분입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뜻이었다.

그의 첫 이미지는 분명 정치인 스타일은 아니었다. 느릿느릿한 말투나 온화한 성격으로 볼 때 공무원이나 학자가 오히려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그는 포항출신이지만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포항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 대구 사대부고로 유학

그의 부친 고향은 영천으로, 죽도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기 위해 포항에 정착했다. 그는 포항시내 중심지인 중앙동에서 태어났다.1949년생인 그는 6·25 직후에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 탓에 여느 아이처럼 늘 배가 고팠고, 그때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릴때 친구들과 수도산과 송도해수욕장, 그리고 형산강에 자주 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릴때 6·25전쟁때 폭격맞은 집들이 많았지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죽도시장에서 장사를 한 덕분에 밥은 겨우 먹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포항에 있는 그의 초·중학교 때 친구들은 "이 의원은 어릴때 착하고 예의바른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포항중앙초등, 포항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구 사대부고에 합격함으로써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비록 그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또래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대단했습니다. 제 중학교 졸업 동기 400여명중 절반이 대구나 서울로 유학갔죠. 그 때 분위기가 그랬습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고등학교때 공자의 '논어'를 읽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주위 친구들은 아마 그의 온순한 성격탓이라고 한다.

"지금도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 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을 늘 가슴에 품고 삽니다. 또 '불환인지부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말고 내가 나를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도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죠."

그는 고등학교 때 탐독한 논어가 그의 인생관 형성에 중요한 기초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때문인지 그는 20년간 각박한 정치판을 지내면서 별로 적이 없었다. 지금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이 구절을 되새긴다고 했다.

▨ 소박한 꿈을 위해 정치에 입문

"주위에서 저보고 정치하고는 안맞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우연한 선택이 삶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저 역시 정치라는 우연한 결정이 평생을 구속시키는 영원한 직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않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힘이나마 나라발전과 국민 생활 수준 향상을 위해 기여하는 길이 정치라고 생각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학(연세대 행정학과)을 졸업한 뒤 잠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다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시절인 1981년 민정당 사무처 요원(공채 1기)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정치 참여 이유는 남들처럼 유명한(훌륭한)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소박하게도 '사회 기여'였다.

MB와의 첫 인연은 그가 민자당 사무처 국장으로 있는 지난 92년. 당시 MB는 민자당 전국구 국회의원이었다. 94년 15대 총선에서는 서울 강동구 갑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MB를 도우기 시작한 것은 95년, 지방선거때였다. 당시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정원식 전 국무총리와 맞붙었던 MB를 도우면서 부터.

그는 "중학교 뿐 만 아니라 같은 고향 선배였기 때문에 MB를 돕는 것은 당연했지요"라고 말한 뒤 "당시 MB곁에는 정치에 밝은 참모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수시로 조언을 해주는 상황이었죠"라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는 MB가 서울시장 재직시절(2002년~2006년)에 서울시도시개발공사 감사, 정무부시장, 정책특별보좌관 등을 지냈다. 그때 박영준 전 청와대 비서관 등 MB 측근들과 함께 대통령 만들기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 포항 출마 절대 안한다

올해초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때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포항남·울릉선거구에서 그의 출마설이 나돌았다. 이상득의원이 출마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다. 지역 정가에서는 MB 당선의 공신일 뿐 아니라 이상득의원과도 각별한 관계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의원의 출마로 그의 출마설은 자취를 감췄다.

"19대 총선에 이상득의원이 나오지 않는다면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지난번에도 저는 결코 이상득의원 선거구 출마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지역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번 역시 저는 고향에서 결코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순리이고 바람직한 판단이라고 봅니다. 저는 MB가 정계를 떠날 때 함께 떠날 생각입니다."

MB와 정치인생을 함께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국회의원 4년간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MB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국회에서 최선을 다해 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들어 몇차례 고향을 찾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총선때는 이상득, 이병석후보 사무실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고향에는 그의 친척들이 있으며, 모친(84)은 동생(경주대 이강식교수)집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고향발전에 대해 그는 "포항 출신인 만큼 포항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역할을 해보고 싶다"며 "대통령 배출 도시답게 고향분들이 자부심을 갖고 맡은 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쇠고기 정국과 촛불집회, 화물연대 파업 등 최근의 국내 정국은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하다. MB의 오랜 측근인 그가 어떤 역할을 할 지 기대된다.

■ 이춘식 의원 약력

▷ 포항시 중앙동 태생(49년생)

▷ 중앙초등·포항중·대구사대부고(68년)

▷ 연세대 법정대 행정학과 졸업(77년)

▷ 민자당 청년국장· 조직국장· 한나라당 강동갑지구당위원장(93~98년)

▷ 서울시청 정무부시장· 정책특별보좌관(03~06년)

▷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특보단 부단장(07년)

▷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현)

▷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현)

▷ 부인 장인경(52)씨와 1남(28) 1녀(26)

▷ 종교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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