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고대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 ‘팍스’는 평화란 의미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의 평화를 뜻한다. 그리스 민족은 수많은 개념을 창조했으나 정작 ‘평화’란 이념은 만들지 못했다. 전쟁이 다반사였던 탓이다. 기원전 8세기 150개 폴리스는 싸움을 멈추고자 4년에 한 번씩 올림피아 경기를 열었다.

그리스인은 서양 문명의 모태이자 민주주의 창시자다. 역사 평설로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저서 ‘그리스인 이야기’ 집필 동기를 말한다.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민주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를 탐구코자 그리스 서사를 다루게 되었노라고.

도시 국가 아테네는 기원전 6세기 솔론의 개혁 조치와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 정치, 이후에 클레이스테네스가 쇄신을 단행했다. 기원전 5세기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승리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침공을 물리쳤고, 이어 델로스 동맹을 주도하면서 제국으로 등극했다.

기원전 462년 스파르타와 패권을 다퉜으나 패배했다. 아테네는 남자 시민들로 구성된 민주 체제. 최고 권력은 시민들 집단인 민회에 있었고 소수 엘리트가 정치를 담당했다. 또한 성인 6분의 1이 정치 참여 권리를 가졌고 여자는 완전 배제됐다.

아테네는 노예제 사회였다. 전체 인구 3분의 1을 차지해 19세기 미국 남부와 비슷한 수치.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적극 관여한 것은 농사를 비롯한 생산 노동을 담당한 가노들 덕분에 가능했다. 당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언급했다. 누군가 자유인이 되고 노예가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최고 영도자 가운데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 민주정 초석을 놓았다. 솔론의 시대에 9명인 정부 관리를 10명으로 늘리고 ‘스트라테고스’라 불렀다. 전략을 뜻하는 영어 단어 어원이기도 하다. 이는 민회 선출 관직으로 아테네 내각이 된다.

또한 클레이스테네스는 도편 추방제를 도입한다. 민주 정치에 위협이 되는 야심가 출현을 막기 위해서다. 요주의 인물을 도자기 파편에 써서 투표했기에 그런 명칭을 붙였다. 민회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은 해당자는 국외로 추방됐다. 시민의 권리는 유지했고 재산을 몰수당하진 않았다.

기원전 5세기 인물인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 정치 절정기를 열었다. 시쳇말로 그는 선거의 천재였다. 33세에 처음 당선된 이래 32년 연속 스트라테고스를 맡았다. 대략 6000명으로 추산되는 그의 데모스 유권자가 열렬히 지지한 셈이다. 비극 작가이자 동년배인 소포클레스는 첫 당선한 이듬해 낙선했다.

장기간 집권한 페리클레스는 언어 능력이 탁월했다. 뛰어난 연설은 시민을 감복시켰고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2500년 전에 행한 전몰자 추도사는 2500년 후에 유럽의 고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명연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눈길이 가는 대목은 외국인에 대한 문호 개방과 정치 무관심에 대한 질타. 그는 외친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시민은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를 떠받치는 시민의 의무를 이행치 않는 것이라고. 죽비로 때리는 듯한 촌철살인.

아울러 페리클레스는 리더가 갖출 덕목 네 가지를 든다. 미래를 예측할 식견과 그것을 설명할 대화 능력, 애국심을 가질 것과 재물 욕심이 없을 것을 강조한다. 올해 대통령 선거 출마자가 되새기고 유권자가 그들을 평가할 잣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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