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회 위원·시인

세계사를 즐겨 탐독한다. 특히 대제국을 이룬 웅대한 서사는 경이로우면서 다이내믹하다.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나라는 고대 로마와 현대 미국이 아닐까. 양국 공히 광활한 영토와 법치에 기초한 공화제로 번영을 이뤘다. 작금 미국은 2000년 세월을 건너뛴 새로운 로마에 비견된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소설적 상상력이 가미된 역사 평설로 공감을 얻는다. 필생의 역작인 ‘로마인 이야기’는 초대박 스테디셀러. 1992년부터 해마다 한 권씩 무려 15년 동안 집필한 대작으로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뤘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건국됐다. 매년 4월 21일은 지금도 축하하는 이탈리아 명절. 로물루스와 3천 명의 라틴족은 팔라티노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북쪽 에트루리아와 남쪽 그리스 식민 도시들 사이에 위치한 지역. 늑대 신화를 가진 로마는 개국자 로물루스 이름을 따서 국명을 지었다.

기원전 3세기 강대국 카르타고와 격돌한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 서부를 장악했다. 이어 기원전 2세기 마케도니아와 시리아를 굴복시키면서 동부를 석권했다. 로마는 일약 지중해 세계 패권자가 되었다.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세에 최대 판도를 이룬 로마는 오현제 시대를 끝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장장 1229년 동안 존속한 거대 제국은 서양 문명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로마가 융성한 요인은 무엇일까. 학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다. 종교에 대한 개방적 사고나 패자를 동화시킨 생활 방식을 들기도 한다.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독특한 정치 체제를 꼽는다. 집정관과 원로원과 민회가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인 공화정 때문이란 것이다.

라틴어 ‘SPQR’은 원로원 및 로마 시민을 가리키는 낱말들 머리글자를 모은 기호다. 로마시 의회는 지금도 이를 사용한다. 시청 공고문은 물론 맨홀 뚜껑에도 새겨졌다고 한다. 로마 제국 후예란 긍지일까. 언젠가 로마를 여행하면서 그 두문자를 보고자 아스팔트길을 살핀 기억이 난다.

원로원은 로마가 건립될 때부터 존재했다. 왕정 시절 부족장 300명이 왕에게 조언하는 기관으로 설치됐다. 기원전 509년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정국의 주역이 되었고 요즈음 국회 비슷한 조직으로 변한다. 원로원 의원은 선출직이 아니라 유력 가문 출신이 임명됐다. 평민도 진출했다.

국가 요직은 이들이 입후보하여 시민들 집회인 민회에서 선거로 결정됐다. 원로원 의원을 포함한 그들 공직은 무급 봉사였고 ‘명예로운 경력’이라 여겼다. 원로원 의원은 건국의 아버지를 뜻하는 ‘파테르’라 불렸다. 미국의 정착민 ‘필그림 파더스’는 이를 본받아 작명한 것이 아닐까 여긴다.

지도자는 역사의식이 중요하다. 그 엄중함을 알면 함부로 처신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언급했다. 후세 평가가 나쁘면 대리석에 새긴 석상조차 무의미하다고. 역사가 타키투스도 주장했다. 최고 권력자는 좋은 추억을 남겨야 한다고.

기원전 107년 집정관에 당선된 평민 태생 마리우스가 포로 로마노에서 연설한다. 그는 땀에 젖은 얼굴로 빵을 먹는 함의를 아는 인물로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겸손한 공복임을 과시하다가 선출된 후에는 오만해진다. 다른 분들은 이름난 조상이 있으나 나는 능력과 성실을 가졌을 뿐이다. 상속 받은 명성보단 스스로 명성을 쌓는 삶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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