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미국 역대 대통령 평판을 보면 순위가 대충 정해져 있다. 일반적 선두는 노예 해방 선언의 링컨. 이어서 건국의 아버지로 칭하는 워싱턴과 뉴딜 정책을 펼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나온다. 서구와 달리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어떨까.

대개 한강의 기적을 성취한 박정희 대통령이 1위로 언급된다. 경제 발전과 새마을운동과 중화학 공업 육성을 진두지휘한 공로가 꼽힌다. 우리 지역 구미는 그런 박정희라는 거인을 배출한 본향. 시내에 ‘박정희로’가 뻗었고 생가와 역사자료관과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이 자리한다.

영화 ‘국제시장’은 개발 독재 시대를 다룬다. 독일 광부로 막일하고 파월 기술자로 돈을 벌면서 악착같이 삶을 일군 사나이 일생. 지난해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에 가면 당시 추억이 오롯이 재현됐다. 이곳 구미엔 1969년 수출 전진 기지로서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했다.

사실 내가 관심을 가진 공간은 유품 전시실. 지극히 사적인 인간미 풍기는 물건이 궁금해서다. 여섯 개가 진열된 ‘행운의 열쇠’를 보니 당신의 불행한 죽음이 오버랩된다. 절대 권력을 누렸으나 인생사 마지막 파랑새는 없기에 그러하다. 아울러 나의 격동기 청춘 시절도 떠오른다. 비극적 사건 직후에 그분이 실려 왔던 국군서울지구병원 바로 지척에 군복무한 탓이다.

인간 박정희는 어디 있을까. 유품을 둘러보면서 느낀 감회. 개인적 메모나 편지 또는 일기 같은 친필은 전혀 없었다. 단란한 가족들 사진도 없었다. 왜 그럴까. 기껏 박 대통령 부처를 그린 정형모 화백의 작품 두 점이 걸렸을 뿐이다. 그분은 영국 처칠처럼 회화가 취미였다. 한데 무엇도 없었다.

일국의 대통령도 일상 애호가 필요하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림을 그렸고 오바마는 골프광으로 소문났다. 김영삼 대통령은 조깅을 좋아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테니스를 즐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선도가 수준급이라 한다. 조만간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취향이 뭘까.

미국 제3대 대통령 제퍼슨은 상원의원 대상 조사에서 ‘존경하는 영웅’으로 지목됐다. 그는 국가 채무를 30퍼센트 줄였고 워싱턴 관저 문호를 개방했다. 요즘처럼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라 국민들과 편지로 소통했다. 지금도 그 우편물이 모두 보관돼 책으로 발간됐다. 무례한 내용도 많다고 한다. 금전 요구나 협박문에다가 욕설도 있다니 사람 냄새가 질펀하다고 할까.

제퍼슨은 자신의 비문에 관한 유서를 남겼다. ‘독립 선언서 기초자, 버지니아 종교 자유 법안의 기초자, 버지니아 대학교 창립자’ 그는 대통령 경력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보단 대학 설립을 가치 있는 영광으로 여겼다. 본받을 순수 정신이 아닌가 싶다.

고대 로마는 오현제 치세를 끝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 마지막 황제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흔히 철인 황제로 불린다. 그는 아들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선정해 비난을 받았다. 역사가 카시우스가 로마 제국의 재앙이라 단죄할 정도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서기 180년 게르마니아 전쟁을 배경으로 황제 자리를 둘러싼 암투를 묘사했다. 몸이 쇠약해진 마르쿠스는 휘하 장군 막시무스를 불러 제위를 맡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말한다. “앞으로 세상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임기를 앞둔 문 대통령도 이런 자문을 하리라 여긴다. 국정을 맡은 지도자는 역사의식이 필수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