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나는 독실한 신도가 아니지만 한 해에 몇 번은 절집에 간다.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와 성당에도 가지만,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은 꼭 절에서 밥을 먹는다. 등산길이나 문화재 탐방 길에도 사찰을 찾고, 법당에 들어가지 않을 때는 문지방 밖에서라도 부처님께 합장한다.

절에서 가끔 듣는 인사말이 “성불(成佛) 하세요!”다. 이 말은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이다. 자신도 이롭게 만들고, 타인도 이롭게 만드는 말이다. 물론 인간에게서 가장 이롭게 된 상태는 ‘주인공’으로서 당당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으로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즉 성불(成佛)하는 것이다.

누구나 다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것에는 고정되어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입장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는 용어(用語)에 근기(根機)라는 말이 있다. 근기라는 말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사용하는 ‘끈기’라는 말도 바로 이 근기(根機)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근기에는 상근기(上根機), 중근기(中根氣) 하근기(下根機)가 있다. 상근기가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면, 하근기는 성불의 자질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근기라도 수행을 통해 얼마든지 중근기, 상근기로 올라갈 수 있다.

가장 위태로운 것이 중근기의 고비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는 몽매한 상태를 벗어나 분별력이 늘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자기 기준으로 매사를 재단함으로써 상근기로 못 가고, 심지어 하근기보다 못한 지경에 떨어지기 일쑤라고 한다. 어설픈 깨달음이 오히려 병이 된다. 칭찬할 때 조심하라. 이무기가 용이 되려다 꽝철이 되는 것이다.

부처가 되려는 소망을 현실화하려고 끈덕지게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기가 탁월한 상근기(上根機)이다. 많은 험난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주인공이 된 사람이면,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상근기다. 불교에서는 이런 사람을 ‘거사(居士)’라고 한다. 비록 스님은 아니지만 치열하게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언제나 밝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남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베푸는 사람, 남을 욕하거나 저주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 자기 자신의 마음에도 안 드는 언행을 일삼으며 혼자 똑똑한 척하는 중근기 사람들을 더러 본다. 용이 되지 못하고, 악에 받쳐 ‘꽝철’이가 될 것 같은 사람이 보인다. 무슨 ‘병자’같이 느껴지는 사람이 보인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여념이 없다.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한 걸음 물러서지 않으면 중근기의 고비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천자문에 망담피단 미시기장(罔談皮短靡恃己長)이란 구절이 있다. 상대방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장점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망(罔)과 미(靡)는 ‘하지 마라’는 뜻으로 경계하는 말이요, 시(恃)는 ‘믿고 자랑하다’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지나치게 남의 단점을 찾아내고, 자신의 장점을 과신하여 자랑하면 하(下) 중에서도 하의 사람이 된다. 서경(書經)의 유궐선상궐선(有厥善喪厥善)이란 구절에 스스로 그 잘났음(善)을 믿고 있으면 그 잘남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용(龍)이 되려다 악이 받쳐 ‘꽝철(나쁜 이무기)’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선거철에 득실거리는 이무기들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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