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대개 세상을 풍미한 인물은 세 가지 표상으로 나뉜다. 문헌 자료와 학자들 연구로 밝혀진 역사적 이미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창조된 문학적 이미지, 민중들 마음에 새겨진 대중적 이미지가 그러하다. 이런 심상과 실체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역사는 뒤틀린다. 그 진실이 중요한 이유다.

사견을 전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적 공과가 선명하다고 여긴다.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평론을 접하면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개발 독재를 미화했노라 비난하는가 하면 빈곤을 벗어난 의지를 격찬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명확한 사실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성취는 박정희 시대가 바탕이 됐다는 점이다.

구미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에 가면 제일 먼저 박 대통령 부처의 마네킹을 만난다.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건 제5대 대통령 취임식 장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한반도 약소국은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다.

20세기 말엽 세계 경제는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대전에 패배한 독일도 3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가장 성공한 나라는 일본. 압도적 산업 강국인 미국의 지배력에 도전한 최초의 국가였다. 세계 2위 GDP를 기록하면서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무역 흑자로 최고 채권국이 되었다.

전후 일본의 경제 성장이 전쟁 덕분이란 것은 아이러니다. 한국전과 베트남전 군수품 조달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일본 총리가 ‘신의 선물’이라 칭할 만했다. 한국동란 발발 직전 도요타는 경영 위기 상태였으나 군납 계약으로 기사회생했다. 또한 미국 표준에 적응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과 타이완이 일군 산업화 달성도 세계 경제에 던진 여파가 대단했다. 1950년대 말부터 압축 성장기를 거쳐 철강·화학·자동차 산업을 지나 첨단 전자로 이동했다. 이후 삼성과 LG 같은 다국적 기업을 소유했고 포르투갈과 대등한 GDP를 실현했다.

박정희 기념관에는 여공들 마네킹이 놓였다. 작업복 차림으로 재봉틀 앞에서 일하는 형상. 이런 봉제 공장은 대한민국 아픈 기억의 상징이다. 산업 역군이란 이름으로 의류를 수출해 외화를 벌고자 수많은 노동자가 희생됐다.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코자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대표적 사례다.

박정희 시대는 수출 증대를 금과옥조로 삼았다. 쥐잡기 운동을 벌여 ‘코리안 밍크’로 불린 쥐의 가죽을 외국에 팔았다. 또한 공공 화장실에 플라스틱 통을 비치해 수집한 소변으로 뇌졸중 치료제 유로키나아제를 제조했다. 당시 고부가 제품.

무역 대국인 한국은 수출 흑자를 쉽게 여기나 외환 위기 이전엔 만성 적자였다. 1980년부터 1997년까지 13번 상품 수지 적자를 시현할 정도다. 외환 위기를 겪은 1998년부터 매년 흑자를 냈다. 그 비결은 원화 평가 절하로 인한 고환율 정책과 재벌 빅딜로 구조 개선을 이룬 탓이다. 최근 무역협회 발표에 의하면 작년도 수출 시장 일등 품목은 77개로 세계 10위라 한다.

역사자료관 야외엔 박정희 대통령 동상이 있다. 그 뒤편 검은 대리석엔 가슴 뭉클한 시가 새겨졌다. 당신이 반려자를 잃고 일주년 기일에 지은 ‘님이 고이 잠든 곳에’란 글이다. 외로운 불빛 아래 슬픔을 상기하며 시상을 자아냈으리라. 근래 박근혜 대통령이 달성 사저로 입주했다. 극도로 피폐한 심신을 추스르고 여생을 즐겼으면 한다. 그 아버지와 딸은 우리 경북과 구미가 낳은 소중한 인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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