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세상사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다. 가장 지혜로운 자는 화(禍)가 시작되기 전에 싹을 미리 없애는 자다. 다음으로 지혜로운 자는 ‘시작된 초기에 화를 방지하는 자’다. 삽이 아닌 호미로 막는다. 그다음은 ‘일이 진행되는 도중이나 완전히 벌어진 뒤에 허겁지겁 수습하는 자’다. 무슨 큰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이 이미 진행된 뒤의 수습은 힘도 들지만 이미 크게 해(害)를 입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앞일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은 지혜가 밝아야 가능한 것이고, 문제를 미리 감지한다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어렵다. 혜안을 가진 자가 알려주어도 보통은 비웃으며 그냥 흘려버리기가 일쑤여서 탈이 난 후에야 큰 대가를 치르고 수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나 전문가의 말을 듣고 재앙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도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다.

어느 집의 굴뚝이 아궁이에서 직통으로 연결되어 연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화기(火氣)까지 함께 나오고, 그 굴뚝 앞에 나뭇단이 놓여 있어 곧 불이 날 것 같은 위험한 상태에 있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이 곡돌사신(曲突徙薪). 굴뚝을 구부려 세우고 곁에 있는 나뭇단을 치우라고 주인에게 충고해 주었다. 그러나 주인은 귀담아듣지 않고 대비하지 않아 며칠 뒤에 불이 나고 말았다.

집에 불이 나자 이웃 사람들이 모두 동원되어 불을 껐다. 불을 끄다가 머리카락이 그슬린 사람, 이마에 화상을 입은 사람, 웃을 버린 사람이 많았다. 집주인이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불길을 잡아 큰 화를 면한 것이 고마워 잔치를 열어 대접했다. 그 잔치에 진화작업을 한 사람은 다 초대되었으나 불이 날 위험성을 미리 충고해 준 사람은 초대되지 않았다. 화재의 위험성을 경고해 준 사람의 충고를 들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곡돌사신무은택 초두난액위상객(曲突徙薪無恩澤 焦頭爛額爲上客)으로 고대 중국 정치 입문서인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말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을 때 일본인 변호사가 수첩에 적었다는 한시(漢詩) 첫머리의 고사이기도 하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을 불태우고, 동양 평화를 불태우고, 세계 평화를 깨뜨릴 자이기에 재앙의 화근을 없애기 위해 저격한 것이라 했다. 지난 3월 26일이 안중근 의사가 서거하신 날이다.

흔히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허망한 소리를 듣는다. 아니다. 위기를 당하여 반전을 노리는 말일 뿐이다. 위기는 ‘위험한 때’를 말한다. 위기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전에 막아야 한다. 유비무환이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보라. 모든 힘을 모아도 처참한 모습이다. 많은 서방 국가들이 각종 무기와 구호물자를 보내 격려하고 있다. 피난민의 행렬, 폐허가 된 거리에 즐비한 주검들. 이게 될 말인가. 고난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가상하여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만, 어쩌다 이런 사태를 만들었는가. 그 많은 주검 위에서, 잿더미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혀를 차고 또 찰 일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침략자만의 잘못인가. 곡돌사신(曲突徙薪)의 대비가 있었는가.

지금 정가에서는 ‘검수완박’으로 사생결단할 태세다. 단군 이래 가장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야단이다. 수사를 경찰이 하면 어떻고 검찰이 하면 어떤가. 국민의 권익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지금은 검찰이나 경찰을 길들이기 할 때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안보와 민생을 위해 마음을 써야 할 때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