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바다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다. 한없이 평온하면서도 돌변하듯 거친 풍랑을 몰아친다. 연인들 사랑을 실은 요트와 산호초 유영하는 스노클링은 달콤한 환상을 자아낸다. 한데 바다는 핏빛 내뿜는 상어의 이빨처럼 무서운 기세로 배를 삼키기도 한다.

최초로 세계 일주를 완성한 마젤란은 그런 난폭성을 몰랐기에 ‘태평양’이란 이름을 지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대양은 침몰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특히 아프리카 희망봉 일대는 난파가 흔했기에 유령선 무대가 됐다. 시인 하이네와 작곡가 바그너는 이를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인류는 식량과 운송을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바다를 이용했다. 선사 시대부터 삶의 기반이었고 해산물 섭취로 해안가 거주 방식을 진화시켰다. 19세기 들어 심해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쓰임새가 나온다. 그 주역은 포경업자와 소설가와 과학자였다. 그들은 인간과 바다의 관계를 확장시켰다.

고래잡이는 먼바다로 진출했고 심해를 잠수하는 향유고래도 뒤쫓았다. 그들이 겪은 생생한 체험담은 작가들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또한 해저 전선이 부설되면서 수중의 길이 열렸다. 사람들 오락 문화도 변했다. 해양 서적을 탐독하고 해변 휴가를 떠나며 아쿠아리움을 찾아 별천지를 즐겼다.

세계사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주도권이 교체된다. 몽골 제국이 이끈 말의 시대에서 유럽 제국이 선도한 배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유럽인은 지중해 동부 접근이 차단된다. 그들은 다른 교역로를 찾고자 대서양 탐험에 나섰다.

근대 서양사는 바다의 발견으로 시작됐다. 유럽 국가들 제국주의 토대인 때문이다. 이는 ‘위대한 발견의 시대’라 칭할 정도다. 그들은 무역과 식민지 건설로 부를 획득하고자 대양을 누볐다. 역사는 지구적 규모로 진행된 대항해로 새롭게 출렁였다.

1967년 웨슬리 막스는 저서 ‘허약한 바다’를 출간한다. 이는 바다를 대하는 시각을 바꾸었다. 고래 살해 자체에 초점을 맞춘 환경론자와 달리 대양 전체에 대한 우려로 확대했다. 수은과 DDT가 어류에 끼칠 위험을 상기시켰다. 대부분 육지 중심 활동을 벌이던 환경 운동가들 관심을 대해로 옮긴 사건이 있다.

바로 미나마타병이 수은에 오염된 생선 탓이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시에라클럽과 오듀본협회 같은 주류 환경 단체는 뒤늦게 바다 문제로 쟁점을 돌렸다. 예외적으로 그린피스와 시셰퍼드는 처음부터 해양에 주목했다. 1967년 영국 콘월 해역에서 좌초된 유조선 원유가 프랑스 북서부까지 퍼졌다.

한국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2007년 발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현지에 가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였다. 해변 모래와 축대에 질펀한 찌꺼기를 흡착포로 닦아내는 작업. 멀리 기울어진 사고 선박도 보였다. 해풍에 묻은 매캐한 냄새와 파도에 밀려오는 타르 덩어리. 온종일 힘들었으나 서해안 석양빛은 장관이었다. 언젠가 베네치아 풍경도 그랬다.

바다를 프런티어로 보는 자세는 해양 자원이 무진장하다는 전제가 깔렸다. 한데 어류 남획과 해저 저인망 어업은 생태계를 휘저었다. 북대서양 대구가 사라지고 태평양 참다랑어도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바다는 아프다. 몸살을 앓는다. 애정 어린 시선이 절실한 시대.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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