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규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매년 집 근처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립니다. 대구 시내 중심가에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을 기리는 공원이 있는데 그곳이 늘 출발점(결승점)이 됩니다. 덕분에 일 년에 한 번씩은 큰 교통 불편을 겪습니다. 사방팔방으로 교통 통제가 되기 때문에 그 행동반경 안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걷거나 지하철을 이용해야 합니다. 대회가 일요일에 열리기 때문에 종교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성장(盛裝)을 하고 걸어서 꽤 오랜 시간을 이동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마라톤 대회에 대한 불만과 함께, ‘왜 달리는가?’라는 어떤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죽자사자 오래 달려서 얻는 이득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저같이 오래달리기와는 인연이 먼 사람 입장에서는(저는 300m만 달리면 숨이 가빠옵니다) ‘인간의 신체 구조와 존재 방식’과는 안 맞는 무모한 일인 것 같았습니다. 고작해야 ‘인생은 마라톤 경기와 같다’라는 격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엉뚱한 반발심마저 드는 것입니다. 아주 먼 옛날 승전보(勝戰譜)를 전하기 위해 목숨 걸고 달렸던 한 인간을 기념하는 일로 시작된 것치고는 너무 커진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오히려 ‘무모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생각 밖으로, 오래달리기에는 제가 모르던 ‘비밀코드’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최후의 포식자로, 지구의 주인,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오래달리기였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남부의 코이산족(호텐토트족과 부시맨족)은 한낮의 열기 속에서 스타인복, 겜스복, 누 같은 영양이나 얼룩말 등 빠른 속도로 달리는 먹잇감들을 잘 포획하는 능력으로 유명했다. 멕시코 북부의 타라우마라 인디언들은 사슴을 탈진할 때까지 추격해 손으로 목을 졸라 죽인다. 파이우트족과 나바호족도 가지뿔영양을 비슷한 방식으로 사냥했다는 보고가 있다. 호주의 원주민이 캥거루를 추격하는 방식은 캥거루가 치명적인 체온에 도달할 때까지 몰아세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포식자들은 자신의 장점을 이용하고, 피식자의 약점을 압박한다. 대부분의 맹수 포식자들은 단거리를 전력 질주하여 기습을 하거나 어린 동물과 늙은 동물, 약한 동물들을 골라잡는 방식으로 먹잇감을 사냥한다. 먹잇감이 되는 동물은 이에 대응하여 최대한 빠르게 달아난다. 그런데 인간 포식자들은 바로 이런 피식자의 행동 특성을 십분 활용하였다. 추격당하는 사슴은 속도 감각이 거의 없다. 살기 위한 전력 질주는 결국 그들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인간 포식자는 사슴의 놀라운 단거리 주파 능력을 보고도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는다. 과도한 운동량이 초래하는 젖산 분비와 체열 축적의 상황을 이용한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력을 가진 인간은 오래달리기로 최고의 포식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베른트 하인리히(정병선), '우리는 왜 달리는가', 214~215쪽, 문맥 일부 수정]


인간은 오래달리기로, 빨리 달아나는, 그러나 일정 시간 뒤에는 젖산 축적과 체열상승으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사슴이나 영양들을 사냥했습니다. 오래달리기로 포식자의 위치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지 하인리히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생물학자이자 문필가입니다. 첫 번째 저서 '뒤영벌의 경제학'이 미국 도서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고 기발하고 세밀한 관찰력과 정확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파헤친 다채로운 자연에세이와 과학책을 저술한 사람입니다. 그의 믿을만한 관찰보고를 존중한다면 마라톤은 ‘비유나 상징’이 아닙니다. 한 오래된 인간의 정신 승리를 기념하는 ‘기호’도 아닙니다. 그런 2차적인 문맥에서 해석할 대상이 아닙니다. 1차적인 작업, 즉 관찰의 대상입니다. 인간에게는 집단무의식이 있습니다(융심리학). 그것 안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영혼에 유전자처럼 각인된 ‘유전된 집단적 경험’들이 많이 있습니다. 벌들이 육각형의 집들을 짓고, 진돗개가 수백Km 떨어진 곳에서 옛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하고 또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오래달리기’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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