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어느 누구도 법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법에 의해 이미 항상 호명되어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피할 수 없는 법의 성격이 최근에 법이 누리고 있는 권력과 편파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법의 무지는 법 개념의 축소와 동시에 발생한 위험천만한 법의 인플레이션에 저항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조운 콥젝) 9.11테러 이후 부시정권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발생한 자의적 법해석과 집행에 대해 일군의 철학자들이 법의 무지라는 제목으로 공동 논문을 발표하였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법이 그 심층에 공백과 중층적 자기모순으로 뒤틀린 무지의 체계라는 주장이 일견 눈에 들어온다,

기독교의 사도신경에는 세 명의 고유명사, 예수 그리스도와 동정녀 마리아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가 나온다. 특별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목 박혀 죽으시고” 라는 구절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만들어진 사도신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해에 로마법과 로마법을 적용하여 예수를 처형한 사실을 직시함으로써 예수 처형의 법적 정당성에 대해 역사적 항의를 문서로 담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1860년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선사도 경상감영 뜰에서 효수되어 대구성 동장대에 매달렸다. 동학교도들은 효수되어 죽은 수운 선사에 대한 신원운동을 벌이게 되었고 이것이 1894년 동학농민전쟁 발발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예수 사건과 동학의 교조 수운 선사의 살해는 국가권력에 의해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근현대사의 이 골목 저 골목에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악행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을 구만리 장천을 헤매는 억울한 넋으로 전략 시켰던가 ! 아직도 그 해원의 길은 멀고도 아득하기만 하다.

로마서의 저자 사도바울은 로마법에 의해 살해된 정치범 메시아 여호수아(예수의 히브리어 발음)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복음으로 선포하며, 신의 아들을 살해한 법과 로마라는 문명체계 전체에 대해 엄중한 비판을 제기한다. 바울은 힘에 의한 법과 평화를 이기시고 부활한 예수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민중들에게, 이방인들에게 헌신적으로 전한다. 성문법과 관습법 체계보다 더 근원적 차원의 법적 정당성을 최근의 신학자들은 “무법적 정의”라는 개념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기독교가 고대 로마의 노예들과 여성들에게 깊고 넓게 퍼져나가게 된 근원은 현실 정치에 오염되거나 왜곡된 법 구성과 뒤틀리고 편파적인 법집행에 대해 바울이 새롭고 대안적인 차원의 법정의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 종족주의와 로마 제국주의를 한꺼번에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주체성을 개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 2022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최초로 검찰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 등, 신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구성하는 사법적 쟁점의 최선두에 항상 있었다. 살아있는 권력인 문재인 정부의 권력의 심층에서 벌어지는 법을 둘러싼 권력게임은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고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야당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5월 9일 취임하였다.

그러나 집권 4개월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호는 항해의 목표와 항로를 찾아내고 열강이 각축하는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진 국가로서 위치를 만들어 내는 지점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의 인력이 20% 이상 교체된다고 하는 뉴스나 집권 여당 내의 내부 권력투쟁은 도를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권력을 재편성하고 국민적 리더쉽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검찰과 감사원 등을 통한 전술적 법 기술이 항상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정권의 인사를 추출하기 위해 감사원을 적극 활용한다거나 사법적 궁지에 몰려있는 당대표를 적극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당력이 총동원된다거나 야당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경찰 소환을 통지한다거나 하는 점은 현 정권이 사법 만능주의로 자기를 반대하는 제 세력들을 사법적 도구를 통해, 그리고 축적된 법 기술의 노하우를 통해 집권기간 내내 말살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두려움을 자아낸다. 물론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현 대통령 진영의 사법 리스크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속전속결로 무혐의 결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유권자들의 법 감정과 심리적 균형감에 혼란을 일으킨다. 현재의 상황은 그래서 법의 인프레와 선택적 정의의 남용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실증법 조항을 통해 정적을 제압하고 권력의 유지하는 법 이해를 넘어서는 정의의 법체계를 선포하고 열정과 헌신을 다한 2000년 전의 바울의 분투가 오늘의 시선으로도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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