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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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감상] 1955년 4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시다. 김종길 시인은 가족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부재했지만,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그의 유년 시절이 시속에 녹아있다.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와 “눈 속”을 헤치고 “약”을 구해 온 아버지의 사랑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고(계춘할망) 했던가. 온전한 내 편들과 행복한 성탄절 맞으시길.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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