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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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다시 내리고
나는 쌀을 씻으려
며칠 만에 집의 불을 켭니다

섣달이면 기흥에서
영아가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얻는 휴가를
서울에서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지난달에는 잔업이 많았고
지지난달에는 함께 일하다
죽은 이의 장례를 치르느라
서울 구경도 오랜만일 것입니다

쌀은 평소보다 조금만 씻습니다

묵은해의 끝, 지금 내리는 이 눈도
머지않게 낡음을 내보이겠지만
영아가 오면 뜨거운 밥을
새로 지어 먹일 것입니다

언 손이 녹기도 전에
문득 서럽거나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우리는 밥에 숨을 불어가며
세상모르고 먹을 것입니다

[감상] 나는 ‘밥심’이란 말이 좋다. ‘식구(食口)’란 말이 눈물겹다. “영아가 오면 뜨거운 밥을 새로 지어 먹일 것”이라는 시인의 말에 울컥한다. 나도 당신에게 뜨거운 밥을 지어 먹이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단순하다. 사랑하는 이와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나눠 먹는 일이 돌봄이고 나눔이고 사랑이고 행복이다.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밥에 숨을 불어가며/ 세상모르고 먹”는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그 사람에게 뜨거운 밥 한 끼 지어 먹이자.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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