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재외동포재단에서는 재외교포 2세∼4세(Korean Diaspora)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매년 한국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 모국연수 캠프를 가진다. 2020년에는 팬데믹으로 캠프를 실시하지 못했고 2021년에는 온라인으로 모국연수 캠프와 영상 퍼포먼스 에세이 등의 작품을 출품 받아 심사하는 ‘더 위대한 도전’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팬데믹의 여진이 남은 2022년도에는 10회의 OFF 라인 캠프와 온라인 연수, ‘더 위대한 도전’ 프로그램을 동시에 운영하였다.


2020년부터 재외동포 청소년 모국연수 캠프의 주제를 Glabal Korean로 잡았다. 흥미로운 것은 Global Korean이 홍익인간의 의역이란 점이다. 한국사가 가지고 있는 보편 이념으로서의 홍익인간은 단군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이다. 홍익인간은 교과서적으로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리민족이 민족사의 시원을 인류 보편적 윤리의 실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홍익인간은 또한 ‘널리 이로운 인간’으로 읽을 수도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윤리적 정향은 분명히 널리 이로운 인간을 그 주체로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과 구한말 나라가 위태로울 때 한국의 민중들은 의병을 조직하여 국난에 저항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목숨을 바쳐야 할지도 모르는 싸움에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민초들이 전쟁 참여의 명분을 ‘의로움’에 두고 스스로를 의병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이 민중들의 생활세계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다가 역사적 위기에 목숨을 던지는 결기와 함께 터져 나오는 것은 우리 역사 속에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소중한 유산이다. 비록 고난의 순간에도 그 고난의 뜻을 묻고 대의와 홍익인간의 보편성을 통해 시대와 대결하는 전통은 동학농민전쟁, 3·1 혁명으로부터 4·19혁명과 광주민중항쟁, 촛불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는다. 민중 신학자들은 이런 한국의 민중전통을 신학적 언어로 ‘민중이 하나님’이라고 공리화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의 민중 신학 운동을 주목했던 독일의 신학자들이 한국 민중 신학자들의 수많은 현장 민주화 운동과 민중 투쟁에의 참여를 지지했지만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민중이 하나님’이라는 한국 민중 신학자들의 외침이었다 한다. 홍익인간의 이념을 내면화한 민중의 보편성을 독일 신학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가를 초과하는 민중의 역사참여와 희생 그리고 홍익인간의 보편성이야말로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이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유산이다. 유럽의 시민들(people)이 근대국가를 만들었던 것처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민주주의를 심화 확대해온 것은 홍익인간의 윤리적 보편성을 향한 멈추지 않는 민중들의 의로운 투쟁이었음은 명약관화한 역사적 사실이다. 2019년 7월 1일 아베정권은 기습적으로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의 진의가 궁금해서 일본YMCA에 활동하고 있는 회원(정부 인사)과 급히 미팅을 가졌는데 일본의 의도는 충격적이었다. 일본은 기습전을 통한 급소 공격과 한국사회 내부의 호응(일부 언론과 야당), 한국정부의 굴복 그리고 연이은 2020년 총선까지의 지속적인 정치 외교적 공세라는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전언이었다. 기습공격에 따른 한국사회 내부의 호응은 일본의 계획대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지만 일본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한국시민사회의 발 빠른 전면적 대응이었다. 한국시민사회는 아베 규탄집회로 대응했고 상인들은 일본상품을 매장에서 철수했다.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한국의 민중은 반드시 출현한다. 의병의 형태로, 촛불 시민의 모습으로, NO 아베 소비자운동의 모습으로… 결국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배의 잔재에 대한 한국 민중들의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나라를 구하는 의병전통은 21세기에도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2018년 한반도 평화의 봄은 하노이 노딜과 함께 사실상 그 동력을 상실했다. 한반도 분단 문제가 수많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 난마처럼 얽혀있다는 현실적 한계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추상적 보편성으로서의 홍익인간 이념은 수많은 시련 속에서 한국시민들의 역사적 DNA가 되었고 보편적 시민을 세우는 동력이 되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전통은 21세기 한국에서 지구촌 내의 다양한 사건들에 참여하는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홍콩 민주화운동, 미얀마 불복종운동, 우크라이나 전쟁 후원 활동, 튀르키에, 시리아 지진 모금운동 등 한국시민들의 관심은 지구촌 세계시민사회로 확대되고 있다. 홍익인간의 추상적 보편성이 역사적 실천을 통해 민족적 보편성, 세계 시민의 보편성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Global Korean’ 라는 슬로건은 세계 속의 한국인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을 담지하고 민족사의 고난을 통해 단련된 세계 시민사회의 보편성으로 진화할 것을 요청하는 기표이자 바램이기도 하다. EU가 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인권과 자유의 보편 윤리를 주창하였지만 제국주의 지배와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책임자인 유럽 제국이 과연 자유와 보편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여전히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틀 안에서 하는 제국주의의 야욕을 숨긴 채 현란한 수사로 속이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피식민지 국가에 대한 사과도 없을 뿐 아니라 피식민국가에 대한 외교 경제적 영향력과 착취를 지속하고 있는 유럽이 보편가치 운운하는 것이 아직은 너무 낯설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홍익인간의 정신이 고난의 민중사를 넘어 세계 시민사회의 보편 윤리로 자리잡는 ‘Global Korean 시대’를 꿈꾸어 본다. 생명의 물결, 평화의 바람으로 가득찬 평화통일의 세상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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