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천 한국지역난방공사 상임이사·사업본부장
정상천 한국지역난방공사 상임이사·사업본부장

한일간의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다. 정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든 갑론을박의 대상 이 되고, 칭찬받기 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다. 현재 한일간의 갈등은 과거사 문제가 경제, 안보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복합 갈등의 상황으로 확대되어 왔다. 우리 정부는 지난 3월 7일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공식 발표하였다. 그동안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보려는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단으로 평가된다. 제3자가 자기의 이름으로 타인의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 제3자 변제인데, 일본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을 우리 정부가 우선 지원재단을 통해서 지원하고, 일본과 우리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시한 ‘1(한일 기업)+1(한일 정부)+α (국민들의 자발적 성금)’ 법안을 제정하자는 아이디어를 원용한 것이다. 당시에도 민간단체들은 ‘일본에게 면죄부 주는 문희상 안을 단호히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했고, 그 이후 별다른 진전 없이 흐지부지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피해자들이 한결같이 요구하는 것은 일본의 ‘공식 사과’와 그에 따른 ‘법적 배상’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강제징용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는 협상의 타결 여지가 전혀 없다. 협상이라는 것은 서로의 양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소위 ‘끝까지 갈 때까지 가보자’식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은 한일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온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즉, 당시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정부는 2019년 7월 우리의 반도체, 첨단산업, 정밀화학 등에 필수적인 소재, 부품, 장비 수출에 대한 규제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는 국내의 반일감정을 크게 자극하였고,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관광 보이콧 등으로 이어져 한일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현재 한일 간에는 강제징용문제뿐만 아니라 수출규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문제,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지난 11년간 중단된 한일 정상간의 셔틀 외교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1990년 아키히토 일왕은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방문시 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단어의 해석을 두고 분분한 논란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사과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고통을 받은 아시아 국민들을 대상으로 ‘다시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소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후 1998년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더 나은 한일관계를 위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해나가자’는 취지에서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현재에도 매우 유용한 양국 관계 발전방향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일 관계가 과거사에만 얽매여 미래로 전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3자 변제 이후 일본정부와 관련 기업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성의 있는 사죄와 유감 표명이 뒤따르는 것이 합당한 처사이다. 아무쪼록 이번 정부의 결정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골디우스(Gordius)의 매듭을 풀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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