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진 소설가
임수진 소설가

어두웠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가 반짝이듯 천장에서 빛이 흘러내렸다. 묘한 신비감에 심장이 조였다. 입을 다물고 발소리를 죽였다. 국보 78호와 83호를 만난 건 작년 8월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불교 조각실 3층 단독 전시방에 1구씩 전시되어 있던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2층 상설 전시관으로 내려왔다.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전시된 곳은 ‘사유의 방’이다. 국보를 맞이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공간은 음소거를 한 듯 고요했다. 왁자지껄한 바깥과 다른 세상이다. 의도된 공간이 주는 품격, 어둠이 몸을 잡아당겼고 이미 빨려들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저항할 이유가 없었다.

확장된 어둠 속에 유일하게 빛을 내는 갈색의 길쭉한 원형. 그 지점에만 빛이 고였고 빛의 한가운데에 반가사유상 두 점이 앉았다. 문화재청이 문화재의 서열을 조장하고 사람이나 자연물 표현에 부적합하다 하여 보물·국보·사적 등에 붙인 문화재 지정번호를 공식적으로 폐지하면서 국보 78호와 83호로 불리던 반가사유상은 개별적 이름을 잃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와 더불어 반가사유상의 애칭 공모를 함께 진행하였다.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기에 제작된 이 두 국보는 허리에 리본이 달리고 화려한 보관이 돋보이는 78호가 7세기 초기에 만들어진 83호보다 50년쯤 먼저 세상에 나왔다. 제작 연도가 빠른 78호는 83호에 비해 키와 몸무게가 조금 작다. 허리와 팔다리도 가늘어 실제로 보면 아주 호리호리한 몸매다. 상대적으로 몇십 년 뒤에 만들어진 83호는 키 93.5㎝, 몸무게 112.2㎏로 더 크고 몸무게도 무겁다.

밀랍주조법으로 제작한 반가사유상의 출토지와 제작국은 명확하지 않다. 제조 기법이나 옷 주름의 형태로 미루어 신라와 백제, 고구려를 추정해 볼 뿐이지만 존재감만으로 마음이 고요해진다. 두 눈을 내리깔고 오른발을 왼무릎에 올리고 오른쪽 팔꿈치로 무릎을 괴고 손가락을 뺨에 댄 모습에서 사유가 깊이가 느껴진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뇌하는 무념무상의 표정에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고 눈썹은 가늘고 길어 눈 전체를 감싼 형태이며 코는 날카로울 만치 뾰족하다. 탑돌이를 하듯이 한 바퀴 천천히 돌며 옆과 뒤태를 감상한 뒤 다시 정면으로 돌아왔다. 온갖 상념과 잡념으로 가득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이 있지만 가끔은 개똥밭에 질린다.

눈만 뜨면 터져 나오는 온갖 종류의 뉴스들. 아집, 분열, 욕망, 자살, 사기, 전쟁, 자연재해로 인한 참사가 먹구름처럼 마음을 덮친다. 인간의 욕심, 그 끝은 어딜까. 사람이 사람 마음에 가하는 테러, 찌그러지고 부서진 잔해와 공기 중에 떠돌다 누군가의 가슴에 쏙쏙 박히는 파편, 어떤 이는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진정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세상이 맞는 걸까.

부처는 솔직하고 올바른 삶을 설파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그 마음에 스스로 휘둘린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리는 건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이며 활시위를 당기는 것 역시 자기 손이다. 명중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것도 결국 자신이라고 하였으니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것 또한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뜻이다. 해탈을 어찌 감히 꿈꿀까만 잠시 자신을 돌아볼 방이 생겼으니 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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