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희  소설가
권소희 소설가

갈 수 없다고 여기면 간절해지는 게 향수병이다. 내게 향수병은 입맛이었다. 김장김치의 톡 쏘는 시원함은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았다. 어디 김치뿐이랴. 동네마다 한두 개씩 있었던 만두가게의 폭신한 만두피는 그리움의 절정이었다. 뽀얀 김이 오르는 뜨거운 만두를 한 입 베어 물면 입가에 퍼져드는 만두소의 감칠맛은 입안에 침이 고이게 했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먹을 때마다 전기구이 통닭이 떠올려지고 새콤달콤한 무 깍두기가 간절해진다. 한국음식은 없다고 생각하니 더 먹고 싶었다.

우리가 사는 섬머 힐 근처에 중국집이 있었다. 한국에서 맛보던 짜장면 맛과 거의 흡사해서 동양반점은 연일 한국 손님으로 바글바글했다. 주인만 화교일 뿐 서빙 하는 종업원은 모두 한국 유학생들이었다. 짬짬이 일을 하는 유학생이라서 그런지 자주 바뀌었다. 그들을 통해 퍼진 소문일까. 손님이 남긴 단무지를 버리지 않고 빨아서 다시 테이블에 올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짜장면을 먹으러 그 식당에 갔다. 화교였던 동양반점 주인은 중국발음이 섞인 한국말로 우리 부부를 반겼다. 유학생이니 탕수육은 언감생심이고 달짝지근한 짜장면 한 그릇이면 외로움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짜장면은 타국에서 얻은 향수병을 달래는 유일한 처방이었다.

짜장면을 먹고 나면 자연스레 중국집 옆에 있는 비디오가게로 향했다. 비디오 가게에 들어서면 한국에서 들어온 녹화테이프 복사하는 소리가 차르르 들렸다. 방영 날짜가 한 달이나 지난 비디오테이프였어도 상관없었다. 한국드라마나 토크쇼를 보면 마치 한국의 안방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귀에 힘을 주지 않아도 한국말은 술술 귀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들리는 영어를 밥을 먹을 때만이라도 피하고 싶었다.

비디오테이프 한 개에 1달러였지만 5개를 빌리면 서비스로 한 개를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미끼처럼 낚여서 호기심으로 보게 된 중국무협 의천도룡기 40개를 섭렵하고 영웅문의 다음 편을 찾았다.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학생 본분은 멀리 바다 너머로 보내버리고 저녁이면 비디오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한 유학생 부부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도 우리처럼 신혼이었다. 유학생이라도 다 같은 유학생이 아니다. 우리처럼 겉만 유학생이 아니고 그들은 정말로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자신들이 방학 때 한국을 방문했더니 ‘조카들이 영어를 해보라’고 해서 진땀이 났다는 그 말에 우리도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그게 실상이었다. 외국에 살아도 영어에 유창해지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러나 공부와 현실은 반비례했다. 영어권 나라에서 영어를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혹시나 잘 못 알아들어서 손해라도 보지 않을까. 아는 단어 몇 개밖에 들리지 않는데도 다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거짓 행동은 한숨짓게 했다. 못 알아들었다고 되물을 수도 없다. 어차피 다시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할 테니 말이다. 얼굴 표정으로 감을 잡고 눈치로 때려잡는 손짓 발짓 소통은 탱크 열 대가 가슴 위로 지나는 고통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생활은 마치 기름에 뜬 물 같았다. 시간은 표류하는 장난감 오리처럼 둥둥 떠내려갔다. 가끔 마약에 빠진 유학생들에 대한 신문기사를 볼 때가 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아마도 공부는 안되고 부모를 속인다는 죄책감으로 현실을 잊고 싶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짜장면을 먹고 비디오를 보듯 타국이라는 담벼락에 서면 도피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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