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필자가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 일어난 일이다. 류마티스 심장병의 예방을 위해서 매달 1회씩 페니실린 주사를 맞던 환자가 ‘아나필락시스(전격적인 심·호흡정지)’로 사망하는 매우 가슴 아픈 일이 발생되었다. 다음날 아침 ‘의료과실에 의한 사망사건이니 담당의사와 간호사를 구속 수사하겠다’고 경찰관이 원장실을 찾아왔다. 당시 다른 일로 병원장실에 있던 필자는 ‘대통령 발령의 국립대학병원 교수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법무부장관의 동의서가 필요하며, 우리도 국립대학병원으로 공무수행 중이니 조사를 할 것이 있으면 병원에 와서 해야 된다’고 버텼다. 결국 담당검사는 의무기록지에서 피부반응검사의 처방과 주사 전에 검사 실시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 병원으로 찾아왔다. 필자는 검사에게 사체의 팔에서 피부반응검사를 시행한 주사흔적을 확인시켰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검사는 피부반응검사가 주사 전에 시행되었는지 사후 거짓으로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간호사에게 거짓말 탐지기를 진행하였다. 주사 전 피부반응검사 시행이 진실이란 것이 확인된 후에야 사고 2주 만에 무혐의로 불기소 종결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진료와 관련해서 발생한 의료과실 책임에 대해서 의사에게 더 가중한 법과 최근에는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간호사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국민을 최상의 진료환경에서 유지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오히려 적절치 못한 의료환경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2017년, 모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신생아 4명의 안타까운 사망 사건으로 여러 명의 의료진이 구속, 입건되었다. 1·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판결로 5년 만에 종결되었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뿐 아니라 특히, 의대생들까지 모두 기억에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위 두 예에서 보듯이 의료사고로 지목된 당사자들이 무죄로 확정되기까지 겪은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환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진료는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인 만큼, 상응하는 진료부담은 더 증가하게 된다. 누가 위험 부담이 큰 진료과를 택하겠는가?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택하는 과는 뻔하다. 사명감을 가지고 생명 지키기에 앞장섰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진료에 위험부담이 없고 응급환자가 없는 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적은 과, 노력에 비해서 수입이 좋은 과이다. 그러면 누가 시시각각 생명에 위협을 주는 질병을 담당하는 필수 진료과, 생명 증진에 꼭 필요한 과들은 누가 맡을 것인가? 의사도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 같은 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 의사가 됐으니 귀중한 생명에 대한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누가 위험한 진료과를 택하겠는가? 생명에 위협을 주는 질병은 전 연령에 다 발생하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그 위험 빈도는 높기 마련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를 담당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직무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상대적으로 의료사고의 위험이 많고 의료사고가 나면 구속되고 고생, 고생하면서 획득한 의사면허증을 박탈하려고 새로운 의료법이 입안 중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공기가 깨끗하고 산수가 좋은 시골집보다도 응급실이 있는 대형병원 옆에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노년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뇌질환, 심장질환, 폐질환 등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 질환의 치료를 위해서는 빠른 시간(critical time;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 내 병원에 도착해야 살 가능성이 높고 후유증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노년의 환자들뿐 아니다. 의사들도 24시간 출동 대기 상태로 당직을 서든지 근무지에서 최단거리에 거주하면서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강원도의 한 종합병원에서 응급실에 근무할 소아청소년과 당직의사를 거액의 연봉을 제시했는데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서 듣고 걱정을 하고 있다. 강원도 뿐만 아니다. 오래전부터 대도시에도 24시간 운영해야 할 응급실에서 소아청소년과 응급진료를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여 격일제로 운영되는 현실이다. 이는 몇 년 동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이 없으므로 응급실 진료에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응급 환자가 격일제로 발생되는 질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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