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면 내서리 다락골서 확인
새로운 문화콘텐츠 구축 기대

조선시대 후기 고종 때 우리나라 최고의 효자로 정려(旌閭)된 효자 도시복(都始復·1817~1891)의 묘와 비석을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다락골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효자 도시복 묘 전경.

조선시대 후기 고종 때 우리나라 최고의 효자로 정려(旌閭)된 효자 도시복(都始復·1817~1891)의 묘와 비석이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다락골에서 발견됐다.

이 같은 일은 현재 문경시 유시일 행정복지국장이 농암면장으로 재임할 때 발견해 문경시 엄원식 학예연구관에게 알리고, 엄 학예관이 현장 답사로 확인했다. 이를 오석윤 문경문화원 이사가 ‘문경문화 127호’에 소개하고, 지난 17일 오석윤·김종호·고성환 향토사가들이 다시 한 번 현장을 확인해 밝힌 것이다.

명심보감 효행편 속편에 효자 도시복의 4가지 효행이 실려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대표 효자인 도시복. 예천군은 효자 도시복이 태어난 상리면을 2016년 2월 1일 아예 효자면으로 바꿀 정도로 도시복 효자를 선양하면서 생가도 잘 꾸며 놓았다.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 깊은 산골에 살던 효자 도시복은 숯을 구워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고, 부모를 여의고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먹고 살기 위해 인접한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로 이주했다가 최종적으로 이곳 첩첩산중에서 돌아가시고 이곳에 영면한 것이다.

그러나 효자 도시복의 효행 이후의 흔적은 예천군 그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고 문경시 엄원식 학예연구관은 밝혔다.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출신인 홍순학 부면장은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효자 도시복이 석항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는 글도 이번에 발견했다. 즉 효자 도시복의 상석에 부인이 곡산 연씨로 묘가 ‘동로 저수령’에 있다고 기록돼 있는 것이다.

엄원식 연구관은 “효자 도시복의 묘소 주변에는 성주도씨들의 다른 묘소들도 산재해 이곳에 집안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현재는 이 마을에 성주도씨가 살지 않으며, 그 후손들이 농암면 선곡리, 상주시 함창읍 일원에 사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효자 도시복에 대해서 효행부분만 드러나 있고, 나머지 삶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며, “특히 문경에 천년유택이 있다는 것은 효자 도시복에 대해 입체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인접한 예천과 같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명심보감 효행편 속편에 실린 효자 도시복의 효행은 인터넷과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 생가 효공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황진호 기자
황진호 기자 hjh@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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