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오픈 AI 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인 챗GPT가 새로운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이른바 세 번째 ‘인공지능의 봄’은 한동안 지속될 듯하다. 최근 챗GPT가 일으키는 열풍을 바라보면,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 간에 바둑 대국이 진행되던 당시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인간과 컴퓨터 간의 대결이 시작되었던 체스 게임에서, 1996년 IBM의 딥 블루는 인간 체스 챔피언을 상대로 1승을 거두었고, 이를 개선한 디퍼블루는 1997년 최종 전적에서도 승리하였다. 체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고 난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는 바둑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해 분명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으나, 최종 결과는 4승 1패로 알파고의 승리였다. 이세돌 9단이 ‘신의 한 수’로 4번째 대국에서 불계승을 거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 이후, 우리 사회의 공론은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함에 따른 인간의 위기에 대한 논의로 뜨거웠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지능정보기술이 추동하는 사회변화의 속도와 정도가 과거 역사에서 이루어졌던 변혁의 모습과는 판이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의 배후에는 인공지능이나 지능로봇으로 인해 인간의 역할이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와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강인공지능이나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지적·물리적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고, 대체 가능한 영역 및 분야는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인공지능 기술에서 자주 사용되는 자율성(autonomy)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자동화된 의사결정(automated decision-making; ADM)’으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자동화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 인간과 인공지능의 판단은 반비례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자동화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인간 운전자의 운행지배가 축소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최근 열린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운전석 없이 탑승석만 있는 무인자동차가 개인 소유 차량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수단으로도 제시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추세를 바라볼 때, 직업 운전사를 중심으로 하는 운송업은 인공지능 시대에서 충분히 대체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듯 자동화된 판단을 통한 인간의 대체 가능성은 정부의 행정서비스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2021년 제정되어 2023년 3월 시행된 행정기본법에서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법은 인공지능 기술 기반 시스템을 포함하는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두었다(제20조). 해당 조항의 제정 이유를 살펴보면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미래의 행정 수요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처분에 재량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도록 하는 단서 조항을 둠으로써, 인공지능 기반 자동적 처분에 대한 규범적 울타리를 마련해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행정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그 첫 번째 사례로서,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외 식품의 수입 가능 여부를 사람 대신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된 시스템이 판단하여 신속한 통관 처리가 가능하도록 수입식품안전관리 특별법 개정안을 마련할 방침임을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인공지능 기술 기반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의 도입 및 활용 영역이 확대되어 가는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가 ‘인간 對 AI’라는 대결적 관계로 나아갈지, ‘인간과 AI’라는 상보적 관계로 나아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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