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희 소설가
권소희 소설가

어린 남매를 둔 그 젊은 부부가 한인사회에 들어왔을 때 다들 좋아라 박수로 환영했다. 한인이 늘어난다는 건 한인커뮤니티의 힘이 세진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인이라고 다 환대를 받는 건 아니다. 학생이라는 명목의 비자를 들고 입국한 한인들에게 무조건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나 총각에 대한 신뢰도는 0에서 시작한다. 달랑 양손에 들고 온 여행 가방이 전부인 싱글족에게 갖는 색안경과 냉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크기만큼의 감춰진 사연이 있을 거라고, 왕년에 금송아지가 열 마리가 있다는 썰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갓 이민 온 이들에게 보내는 의혹의 곁눈질은 당연하다.

무슨 사연으로 피붙이가 사는 가족들을 버리고 이 먼 타국으로 흘러들어온 것인지. 혹시 말 못할 사고나 치고 호주로 도망쳐 온 게 아닌 건 아닐까? 아니면 앞으로 사고를 치고 도망칠 위인은 아닌지 잔뜩 경계하고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쉽게 남을 믿지 못하는 한인사회에 남매를 둔 한 가정이 호주에 입국을 했으니 그 가족은 일단 의심의 1단계는 무사통과였다.

품성 좋아 보이는 아이 엄마의 후덕한 인상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 아빠의 듬직한 체격 때문인지 그 가족은 단박에 사람들 속에 섞이고 어울렸다. 초등생으로 보이는 그들의 두 남매도 아이답지 않게 진득했고 차분해서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교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찬을 담아 그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갔다. 게다가 일자리까지 알선해주었다. 그에 반해 우리 부부는 아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겉돌고 있는데 교인들은 그 가족에게는 빗장을 열며 자신들의 영역 안으로 그 가족을 끌어들였다. 그들 부부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럽고 한편으로는 야속했다. 우리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믿지 못할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토록 교인들에게 인기 많았던 그 가족이 야반도주를 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속았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게다가 그 부부에게 크고 작은 돈을 빌려준 교인도 많았다고 한다. 교인들에게 항상 웃는 표정을 짓던 남자의 얼굴 표정이 계획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위장술이었다니.

그 소문을 듣고 나는 벌린 턱을 다물지 못했다. 그 선한 표정에서 어떻게 내 돈을 떼먹고 짐 보따리를 챙겨 달아날 거라고는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에게 돈을 꿔달라고 요구했다면 우리도 거절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들은 우리 부부에게 접근하지 않아 떼인 돈은 없으니 운이 좋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동네 저 동네로 떠도는 장돌뱅이나 방물장수는 역마의 기운이 강하게 발동되는 이들이다. 떠돌아다니는 직업은 한 동네에서 낳고 자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적 정서와는 역행되는 일이다. 다니다 객사하는 일도 일어날 테니 오죽하면 사주팔자의 12신살 중 하나인 ‘역마’는 ‘살’이라고 표현하겠는가. 하물며 타향이 아니라 아예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 사는 이민자들의 삶은 과거 남사당패와 버금가는 팔자라 할 수 있겠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이효석은 고달픈 떠돌이의 지난 과거를 상채기 난 살에 소금 뿌리듯 풀어놓았다. 자신의 혈육인지 모를 동이와 달빛이 쏟아지는 메밀밭을 지나는 허 생원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역동적인 삶을 오히려 아련하게 만들어버린다.

해외여행이 낭만처럼 여겨지는 것이 그 단편소설에서 비롯된 것일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여유의 절정이며 인생의 로망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격동적인 경험을 얻기 위해 여행은 필수다. 그 여행길에서 나는 여러 인연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래도 늘 떠나고 싶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