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균 영남대학교 객원교수
오창균 영남대학교 객원교수

전문가들은 오늘날을 일컬어 개인 감성의 시대라고 한다. 개인의 감성이나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곳에서 창조적 에너지가 생겨나고 경쟁력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든 지역이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 선택에 호의적인 문화는 저절로 자라나는 게 아니라 숱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다.

다행히 요즘 우리 지역은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개방성을 강조하고 자율성에 대한 언급도 많다. 그런데 외부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미지근하다. 아마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개인주의와 다원주의가 자리 잡을 만한 초기 조건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전개를 장담할 수 없다고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우리 지역은 주민들에게 개별 이념과 종교와 소득을 물어볼 경우 다이념 다종교 다계층 사회의 성격을 드러내지만, 그런 분화에 어울리는 각양각색의 이익 증진 노력이 활발하지는 않다. 지역사회가 역동적이고 개인의 개성을 존중할수록 ‘부분’을 지향하기 마련인데, 아직까지 우리 지역이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갈등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주민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문득문득 고개를 돌리고 더러는 아예 갈등의 싹을 잘라버리려 할 때가 있어서다.

우리 지역사회는 유난히 토박이 비율이 높아서 구성원들의 삶 속에 녹아든 문화요소가 매우 유사하다. 그러니 애쓰는 만큼 각기 다른 개인의 개성이 드러날 틈새가 거의 없다. 톡톡 튀는 주장과 독창적인 스타일이 아무리 매력 있고 그럴싸한들 나타났다가는 금방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낯선 것을 향한 거부감은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과제인데, 우리 고장이 유독 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주장을 강하게 제기할 때 내부적으로 이에 거부감을 느끼도록 촘촘하게 짜여진 문화 그물망도 특징이다. 여기서는 적극적인 의견 표출마저 이기주의로 비난받기 쉽다. 가끔씩은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부딪히면서 생겨나는 균열과 갈등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왜곡한다는 것이다. 지역 차원의 공익이 무엇인지는 어느 일방이나 특정인의 의지보다 자유로운 주민 논의와 타협을 거쳐 결정될 사안이지만 적절한 절차를 무시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대개 바람직한 사회란 내부에 온갖 색깔의 이해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서 누구든지 자신의 선호를 밝히도록 허용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조금 못 미친다.

갈등 해결방식도 마찬가지다. 우리 지역은 내부 이해 대립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걸 꺼린다. 그러다 보니 원래 소규모였던 갈등이 일단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예상 밖의 파장을 일으키고 해결 또한 험난해진다. 아울러 우리 지역에는 갈등이 실재하되 감춰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갈등 노출을 탐탁잖게 여기므로, 경쟁은 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끼리 터놓고 싸워서 문제의 원인을 풀어내기가 몹시 어렵다. 만일 이러한 특수성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고 지속된다면 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소중한 가치를 내면화하거나 구현하는 길은 요원해진다.

최근 지역의 주요 대형사업 입지 선정과 관련해 주민 불만이 제기되고 종교시설 건립을 두고서도 갈등이 만만치 않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문제를 합리적이고 슬기롭게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지역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제고하는 방안의 하나다. 저변에 구축된 다이념 다종교 다계층 사회의 다원적 갈등구조를 외면하고 문화요소에만 의지해서 쟁점을 바라본다면 올바른 접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대구경북은 다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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