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진 소설가
임수진 소설가

예고편에 끌려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예고편은 신상품 출시를 알리는 홍보와 같아서 구매자의 욕구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므로 편집이 대단히 중요한데 예상대로 밀도 높은 장면이 폭탄처럼 쏟아져, 구매와 결재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라스트 버스」. 제목에서 이미 감성이 건드려졌다. 아흔을 넘은 노인이 주인공이다. 톡 쏘는 향신료나 칼칼한 맛과는 거리가 멀다. 단순 플롯에다 구성은 사건이 일어난 순이다. 담백하고 순한데 맛은 깊다. 도입부는 주인공 폴이 아내와 사별한 뒤 그녀와 추억이 깃든 고향에 가기 위해 버스 여행을 시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노인 무료 교통 카드를 이용하여 아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영국 최북단 존오그로츠에서 남서쪽 끝인 랜즈엔드까지 가는 여정이 과거와 교차한다. 여행 중 길거리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지만, 그는 종단을 멈추지 않는다. 걸을 수 있을 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첫돌 무렵에 잃은 딸의 묘지를 찾아가 작별을 고해야 했고 아내와 추억이 깃든 장소에 그녀의 유골을 뿌리는 일이었다.

그의 의지가 그를 목적지에 도착하게 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방파제에 선 노인. 보는 이를 가슴 조이게 할 만큼 쇠약하다. 굽은 허리, 흐린 눈, 모든 게 불안하지만, 계획한 임무를 무사히 마친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작품이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이다. 이곳에서도 남편인 앤스가 죽은 아내의 관을 마차에 싣고 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아내가 묻히길 원한 장소는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한여름에 큰비까지 내려 도로가 유실되고 다리가 무너져 열흘이 걸렸다. 도중에 관이 물에 떠내려갈 뻔한 일이 발생하고 아들들이 다치고 화상을 입었다.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곳에 묻어주겠다는 일념은 있지만 무능하다. 아내를 매장하러 가는 중에도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의치를 해 넣지 못한 게 속상하다.

이 소설에서는 죽은 어머니가 화자이면서 동시에 남편과 아들딸, 의사와 목사에게도 서술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화자를 통해 상대방의 심리를 추측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입을 통해 듣게 했다. 어머니는 죽어 있으면서 이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는 듯하고 남은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감을 극복하며 애도의 방식 역시 다르다.

「라스트 버스」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오로지 본인의 의지로 끝맺음 짓는 형식이라면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중년의 남편은 재혼하고 자녀들 역시 새어머니가 가져온 축음기에 기뻐하거나 바나나를 먹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은 남편이다. 그는 아내를 묻자마자 의치를 해 넣고 재혼한다. 비도덕적이다, 비열하다 낙인찍기보다는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간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이다. 그걸 이수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소설 속 화자는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죽음은 밝음도 어둠도 아니다. 한 사람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삶은 이어진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면도 있지만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생물에 초점을 맞추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가까운 사람이 생의 마지막을 이수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슬프다, 아프다의 감정은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독감처럼 찾아왔다. 삶이 너무 가볍다 싶으면 예술과 마주해 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영화든 미술이든 책이든. 과도한 교훈은 이질감이 있지만, 툭 던져지는 메시지에서 삶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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