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식 안동병원 경북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예방관리센터장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이던 2020년 당시 김헌주 당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한 “의사는 공공재” 발언은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전공의 파업 격화에 일조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 및 의료 서비스는 정말 공공재일까요?

저명한 경제학자 맨큐가 쓴 ‘경제학 원리’에 따르면 공공재는 누구나 그 재화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배제성이 없음), 소비에 있어서 경합성(어떤 사람이 재화를 사용할 때 다른 사람은 그 재화 사용에 제약을 받음)도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의료기관 당연 지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의료 서비스는 배제성은 거의 없지만 경합성은 상당히 발생합니다. 가령 어떤 신경외과 의사가 뇌출혈 환자의 응급 수술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다른 뇌출혈 환자는 즉각 치료를 받지 못하므로 치료를 위해 대기하거나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치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료 서비스는 공공재가 아닌 공유자원에 해당합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누리는 공적 재화 및 서비스는 대부분 공유자원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공유자원의 비극”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풀을 먹일 양(羊)이 적을 때에는 동네 공동 소유의 풀밭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하지만 양의 수가 늘어나게 되면 풀밭은 늘어난 양 때문에 자라는 속도보다 먹히는 속도가 더 빨라져 폐허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의료 서비스도 서비스의 수요가 적을 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게 되면 상당부분 가격이 통제되어 있는 의료서비스 공급량을 자연스레 증가시키기가 어려워 정말 의료 서비스를 급하게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보건 의료 체계는 민간의료에 대부분의 서비스를 의존하는 방임적 자유경쟁시장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1970년대에 시작되어 1989년에 전국민으로 확대된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체계가 보건의료의 보편적 이용 및 최소한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서비스 이용자 입장에선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 본인 부담이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민간 실손의료보험인데 본인 부담금이라는 가격장벽을 없애고 실손보험 수급이 쉬운 의료서비스 수요가 폭증하는 등 본래 목적과 달리 보건의료시스템에 더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보건의료비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며 의료 서비스 공급량을 늘려왔기 때문에 의료 공급자 입장에선 만성적인 저수가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와 같이 의료 수요가 감소하거나 일하는 시간이 많고 힘들거나 의료소송의 위험이 높고 진료비 수입이 적은 진료과목의 인력 인프라 붕괴를 막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의료 전달 체계의 붕괴에 따른 대형병원 쏠림현상과 그를 더욱 악화시키는 병상관리 정책 부재는 대형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개원 러시를 일으키며 의료자원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의료 서비스를 공급할 의사 및 의료인과 병원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보건인력, 의료 서비스의 공급량을 늘리려면 필연적으로 의료비 지출 증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추이는 선진국 중 가장 빨라서 현재는 GDP대비 의료비 지출 비중이 OECD 국가 중에서도 평균 이상이 되었으며 건강보험공단의 적립금은 고갈 직전이어서 지금 상태로도 건강보험료 요율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높은 의료의 질에 대한 욕구, 그리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간호법으로 상징되는 의료계 직역들 간 파워게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의료 수요 제어,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의사 과학자 양성과 같은 해결해야 할 보건 의료의 중요 과제들을 제한된 보건의료 재원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적어도 의료비 지출 폭발이라는 타노스급의 파멸적 존재가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키기 직전의 상황에서는 지금 의료인들이나 국민끼리 편을 나누어 벌이는 흡사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편을 나누어 싸우는 것 같은 시빌워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더 이상은 우리 사회가 간호법, 의대 정원 증원 및 의대 신설, 의과학자 양성이나 연구중심 의대 설립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늦추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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