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누구나 태어나면 제자가 됩니다. 살면서 많은 스승들을 만납니다. 간혹 운이 따르면 제자로만 살지 않고 스승으로 살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최초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공자에게도 여러 스승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그의 아들 주공(周公)이었습니다. 문왕은 주나라의 토대를 닦은 이이고(주역의 편찬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공은 어린 조카를 도와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끈 사람입니다. 그들은 문화영웅들이었습니다. 공자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늘이 문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문왕의 도를 이은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주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생을 그의 시선 안에서 살았다고 공자는 토로합니다. “요즘 주공을 꿈에서 뵌 지가 오래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두 스승에게 공자는 한시도 제자 노릇 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공자의 이런 성실한 제자 노릇이 그를 인류의 큰 스승으로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별 뜻 없이, 생각나는 대로, 위대한 스승들의 특징을 몇 가지 적어 봅니다. 첫째 그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로 말로만 제자를 가르칩니다. 맥락을 잘 활용하고 정감적인 아우라 안에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감적인 지혜와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데 힘을 기울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주로 비유나 상징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둘째, 그들은 까다로운 사람들입니다. 천성적으로 요구(demand)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늘 위대한 스승의 가혹한 요구에 허덕입니다. 매일 매일의 과제에 힘겨워합니다. “구하라, 얻을 것이다”라는 스승의 말은 “그런 식으로는 평생 구해도 못 얻을 것이다”로 들릴 뿐입니다. 예수에게는 사도 바울과 같은 특출한 제자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스승이 죽고 나타났습니다. 위대한 스승들은 늘 불패의 환상을 제시하고 그걸 믿으라 합니다. 보통 사람인 제자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 채 믿어야 합니다. 보지도 못했으면서,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는 스승의 말 한마디에 제자는 자신의 전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셋째, 그들 위대한 스승들은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추앙됩니다. 살아서는 독배를 마시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허접한 음식을 먹고 체해서 죽거나, 마누라도 자식도 없이 쓸쓸히 죽거나, 자신이 부리던 자들에게 배신당합니다.

그런 위대한 스승들에게는 반드시 위대한 제자들이 있습니다. 참을성 있고 착하고 성실한 제자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들 위대한 제자의 존재 없이는 위대한 스승도 나올 수 없습니다. 그들 위대한 제자들의 덕목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은 초인적으로 적거나 암기합니다. 그들은 타고난 하이퍼그라피아(글쓰기 중독증)들입니다. 플라톤도 적었고, 증삼과 유약도 적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두 위대한 제자 아난과 바울도 그랬습니다. 누구는 불교는 아난의 종교이고(나는 이렇게 들었다), 기독교는 바울의 종교라고 말했습니다(바울의 편지). 모두 스승의 말을 하나 없이 기억해내고 끊임없이 적는 하이퍼그라피아 인간들이었습니다. 허공을 헤매는 스승의 말들을 일이관지(一以貫之), 맥락을 잡아서 지상의 복음으로 고정시킨 것은 모두 그들의 공덕입니다. 둘째, 그들은 끝없이 견디는 자들입니다. 위대한 제자는 까다로운 스승을 견뎌냅니다. 스승이 현실을 저만치 앞서서 갈 때 제자는 어떤 회의(懷疑)도 없이 묵묵히 그 뒤를 따릅니다. 셋째, 그들에게는 공(功)이 없습니다. 모든 공은 스승의 몫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 선생님의 말씀, 부처님의 말씀만 있을 뿐 자기의 말, 자기의 공은 없습니다.

반성을 해봅니다. 젊은 시절 지은 한 책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스승에게 배워 본 적이 없었다”라고 쓴 적이 있었습니다. 참 오만방자하고 무식한 시절이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성실하게 견디는 제자가 되어 나만의 위대한 스승 한 분을 꼭 모셔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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