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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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없이 귀신이 되어가는 세월
시를 쓰기엔 인생이 너무 짧은 건 아닐까
변명을 횃불처럼 들고 찾아가는 산 82-5번지 모래 사원
염주를 주렁주렁 목에 걸고 있는 개미귀신이란 놈은
시체애호증이 있어서
집 가까운 곳에 마른 피육을 쌓아놓는다
침침한 눈으로 머리카락을 골라내듯 언어를 골라내기엔
너무 늦은 저녁, 신경쇠약으로 잔뜩 찡그린 얼굴로
어제 먹다 남은 말을 마저 먹는다, 아득바득
시를 쓰기엔 인생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수도복을 입은 개미귀신들이 미사라도 보는 걸까
모래 속에 몸을 납작 엎드린 채 울고 있다
부스스, 내 손에서 사라지는 고운 모래의 언어를 만져본다
시를 쓰기엔 너무 캄캄한 모래 구덩이에서
죽은 비유들을 해골처럼 주렁주렁 꿰어 목에 걸고
그중 입맛에 맞을 것 같은 시 한줄을 맛보다가
퉤, 하고 뱉어내는, 당최 입맛이 없는 개미귀신 한 마리
폐업신고라도 해야 할까

[감상] 검색창에 ‘개미지옥’을 넣으면 명주잠자릿과의 애벌레나 모래 함정이 아니라 ‘주식’, ‘작전주’, ‘빚투’, ‘약물중독’, ‘마약중독’, ‘사이비종교’, ‘사채’ 등이 상위에 노출된다. 세상은 ‘개미귀신’, ‘개미지옥’이 아니라 ‘인간귀신’, ‘인간지옥’만 득시글거린다. 개미가 개미지옥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개미의 몸무게 때문이다. 딱 그만큼의 욕망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 “사랑도 없이 귀신이 되어가는 세월”이 개미지옥이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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