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명예교수

스물세 살, 마침내(?)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하숙집 건물이 팔려 폐업을 하게 되어 새 하숙집을 구했습니다. 도청 근처라 공무원 하숙생들이 많은 깨끗한 2층 양옥 하숙집이었습니다. 사람도 집도 다 좋았는데 한 가지가 불편했습니다. 퇴직 공무원이었던 주인집 아저씨가 자식 같은 저를 보고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밤마다 찾아와서는 마작(麻雀) 배우기를 권했습니다. 룰도 모르고 취미도 돈도 없다고 하니까, 자기가 금방 가르쳐 줄 거니까 염려 말라는 거였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은 두어 판만 해 보면 금방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줄곧 꾀었습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야 하는데 마침 자리가 하나 비었다며 나중에는 거의 강권하다시피 했습니다. 마작 도구들을 제 방으로 가져와서는 허락도 없이 펼쳐놓고 ‘만(萬)’이 어떻고 ‘통(通)’이 어떻고 가르쳐댔습니다. 기품 있게 늙은 서울댁 아주머니를 아내로 둔 아저씨는 낮에는 빨래나 청소, 설거지 등으로 아주머니를 도왔고, 밤에는 마작판에서 본인의 용돈을 벌어 썼습니다. 처음 해 보는 직장생활에다 대학원에 진학해 평소 안 하던 공부까지 해야 했던 저로서는 참 곤란한 지경이었습니다. 밤마다 찾아오는 주인아저씨가 마(작)귀(신)처럼 보였습니다. 끝내는 눈물을 머금고 하숙집을 옮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 번씩 그때가 생각납니다. 기품 있게 늙은 아내가, 오불관언하고 방 안에 처박혀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퇴직 공무원인 저를 보고 큰 소리로 “좀 도와라, 하는 일도 없으면서!”라고 빨래 널기나 청소하기, 분리수거 같은 것을 강요할 때마다 불쑥불쑥 그때 그 시절의 하숙집 아저씨가 생각이 납니다. 아직 설거지까지는 강요받지 않고 있습니다만 조만간 그 일도 제 일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면 자연스럽게 마작 생각도 납니다. 얼마 전 한 영화에서 마작 하는 장면을 보면서 불같이 “그때 좀 배워둘 걸!”하는 염이 솟구쳤습니다. 그 동전 몇 닢이 아까워서, 쥐뿔도 남은 게 없는 책공부나 한답시고 마작의 신세계에 들 기회를 놓친 것이 종내 후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작을 제대로 배워두었다면 지금쯤 마작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걸레 같은 외로움에 몸을 닦지’(이승욱) 않아도 될 것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늘그막의 외로움 때문이겠지만 제 마작 타령은 일부는 제 타고난 승부(도박사) 기질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젊어서 한때였습니다만, 돌이켜 보면 제 인생행로 중에서 승부를 걸고 몰입했던 시절만큼 저를 황홀하게 해준 것도 없었습니다. 그 판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진국이었고요. 오직 자기 일에만 몰입해서 자기 전부를 걸고 승부를 내는 사람들은 도박판에서 올인을 외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모두 영웅호걸들이었습니다. 나이 들어서 직장에 안주하고 가족 부양에 올인하면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본 일이 없습니다. 모두 옛날 하숙집 아저씨처럼 엄처시하(嚴妻侍下)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퇴직 공무원 캐릭터들뿐이었습니다.

마작이 제 곁을 스쳐 지나간 때를 회고하면서 모든 것은 다 때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쉽게도 마작은 때가 아닐 때 저를 찾아왔습니다. 첫사랑의 때가 왔을 때 제 곁에 있던 한 소녀를 사랑했고, 공부를 해야 했을 때 불철주야 공부를 했습니다. 안팎이 호응해서 가방끈을 늘였습니다(외부에서 도움이 왔습니다). 결혼할 때가 왔을 때 마침내 저를 사랑해 준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소설가가 될 때가 왔을 때 도적처럼 소설 몇 편이 제게 내려왔고요. 모두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준(準) 퇴직공무원이 되어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낼 때 페이스북이라는 sns 글판이 제게 와서 저를 다시 승부의 세계로 불러냈습니다. 거기서 지금까지 무려 11권의 책을 써냈습니다. 한 권은 출판 준비 중이니 총 12권인 셈입니다. 세상사 모든 게 다 때가 있음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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