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백승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며칠 전 돌아가신 은사님의 사모님이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면회하러 갔다. 병실 면회는 감염병을 우려하여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용역업체 직원이 방문자를 일일이 확인하였다. 등록된 간병사나 가족보호자가 아니면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면회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그 대학의 명예교수임을 내세워 면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끝내 면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특권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조금은 부끄러웠다.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낸 데’ 하면서 특별한 대접을 받기를 기대하거나 요구한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대우해달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사람들이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정치인들이다. 국회 회의 중에도 거침없이 코인 투자를 되풀이했던 무소속 김남국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그저께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3대 3으로 부결되었다. 일반 직장인들이 근무 중에 업무를 소홀히 하고 코인 투자에 몰두하다가 적발되었다면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다른 모양이다. 윤리특위 소위에서 부결표를 던진 것으로 보이는 더불어민주당 세 명의 국회의원에게 김남국 의원은 특별한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모르긴 모르지만 아마도 그들은 스스로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정치인이나 선거에 나서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한다고 하지만 실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일반 국민들과 함께하는 정치인이라면 국민들의 기대수준에 맞추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들에게 그들은 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하기야 국회의원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많은 특권이 부여되어 있으니 그런 착각을 할 만도 하다.

유권자로부터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국가공동체나 지역공동체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 지혜로움을 갖추지 못한 특권의식은 함께하는 삶을 불가능하게 한다.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지난 8월 29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를 제발 좀 새겨듣기 바란다. 그는 “제가 평생토록 관찰한 자연에도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더군요. 서울대 졸업생으로서 혼자만 잘살지 말고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이끌어 주십시오”라고 졸업생에게 당부했다. 덧붙여 “주변은 온통 허덕이는데 혼자 다 거머쥐면 과연 행복할까요”라고 반문하며 “오로지 정도만을 걷는, 공정하고 따뜻한 리더가 되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자기가 잘 났으니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생각을 갖기 힘들 것이다.

국민의힘이 되었든 더불어민주당이 되었든 여야 정치권은 말로만 정치개혁, 정치개혁 하지 말고 지금 당장 국회의원의 각종 특권부터 포기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특권이 부여되면 될수록 특권의식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인은 일반 국민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은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남국 의원 제명안 부결을 계기로 여야정치 지도부는 하루빨리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는 입법에 나서야 한다. 특권의식 없는 정치인이야말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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