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진 소설가
임수진 소설가

명품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알뜰하다. 커피, 음식값을 아껴 기어코 원하는 걸 손에 넣는다. 찜해 둔 걸 손에 넣었을 때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삶의 방향도 소비패턴도 그녀와 다른 나는, 몸이 명품이라 그런 게 필요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한때 나는 샤넬 향수에 빠져 지냈다. 향수계의 혁명을 일으켰던 샤넬 No. 5는 전 세계에서 30초에 한 병씩 팔려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가브리엘 샤넬이 “여성의 향기가 나는 여성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세상에 온 No. 5는 신비롭고 복합적인 향도 압권이지만 배우 메릴린 먼로의 한 마디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는 인터뷰 중 어떤 잠옷을 입고 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 No. 5”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너도나도 향수만 입고 자는 꿈을 꾸게 했다. 실제로 샤넬은 매력적인 외모에 보호 본능을 일으킬 만큼 날씬했다. 그 모습을 생을 마감한 여든여덟까지 유지했고 떠나기 직전까지 일에 열정을 보였다.

프랑스 남서부 소뮈르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어머니를 잃고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재봉기술을 배운 그녀는 보육원을 나와 파리 근교로 이주하면서 상류층 사람들과 어울렸다. 당시 여성들의 몸은 코르셋에 감금되듯 억압받고 있었고, 모자는 지나치게 크고 넓어서 시야를 가리는 건 물론 옆 사람과 대화하기도 힘들었다.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던 샤넬은 미적 효과만 있는 거대한 모자와 몸을 속박하는 코르셋 대신 실용적이고 편안한 스타일의 모자와 옷을 선보였다. 처음의 반응은 사늘했다. 여성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기보다는 남성에 종속되어 살던 때라 그녀들은 자신을 한껏 꾸미고 치장하여 남편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데 힘썼다.

코르셋이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옥죄는 만큼 가녀린 몸과 잘록한 허리는 강조되었고, 그 모습이 신분 유지와 우월감의 징표였다. 상류층 여성들이 매일 입는 코르셋을 빈곤층이나 농어촌 여성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축제 때에나 입었지만,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이 높아지면서 점차 샤넬의 세상이 열렸다.

사람들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소유욕이 더 강하다. 명품을 좋아하는 건 희소가치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족하기보다는 타인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에 더 신경을 쓰며 평가에 따라 행복감이 상승하기 때문에 기대효과를 가져다줄 제품에 기꺼이 투자한다.

오스트리아 사회학자 라우라 비스뵈크는 ‘내 안의 차별주의자’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기본 욕구만 채워져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썼다. 명품 소비는 신분 소통의 수단이며 자동차, 가방, 의류나 시계와 같이 상징성 있는 상품을 이용하여 사회적 지위를 구축하고 차별성을 통해 인정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한다.

가격이 내렸을 때보다 최대치로 올라가 대중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때 더 잘 팔리는 이유를 미국 사회학자 베를린은 ‘유한계급’에서 과시적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는 덧붙여 정말 부자는 돈이 자신에게 아무 소용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정판 운동화를 사든 10만 원이 넘는 빙수를 먹든 지불 능력이 있고 낭비적 지출이 아닌 계획적 소비라면 한 번쯤 우아한 백조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명품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또한 그 가치로 사람이 평가되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증명용이 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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