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천 파리1대학 국제관계사 박사
정상천 파리1대학 국제관계사 박사

현재의 남북관계는 어느 모로 보나 ‘경색국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남북한 간에 이렇다 할 대화와 교류의 물꼬가 트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따로국밥’처럼, 남한과 북한은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을 만들고 있다. 노래 평행선의 가사가 떠오르는 국면이다 : “나는 나밖에 모르고, 너는 너밖에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길을 걷지 평행선”.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말하여 무엇인가 남북교류와 협력의 새로운 정책이 펼쳐질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하였다. 그러나 통일대박론은 그것을 실행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남북관계가 가장 경색되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통일은 밤도둑처럼 언제 올지 모른다”는 준비되지 않은 기대감을 고무풍선에 바람 넣듯이 주입하였으나 끝내 그 밤도둑은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작은 정부를 내세워 통일부를 해체해서 외교부에 통합하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아 중단한 적이 있다. 대신에 당시에 550명이었던 통일부 직원 수를 80명 감축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북한은 2008년 3월 29일 남북 당국 간 대화와 접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는 선언을 하였고, 이에 따라 남북대화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남북 간 대화 창구인 통일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간의 제대로 된 국장급 회담 한 번 없었고, 오히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전례 없는 무력도발로 남북대화는 끝내 재개되지 못하였다.

2021년 7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작은 정부론’을 내세워 통일부 폐지를 주장한 적이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대선 공약집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굴종적인 자세로 남북관계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했다”라고 밝혀 당선되면 통일부 조직에 대한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으로 일찍이 예견되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올해 7월 2일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면서 “이제는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라고 밝혀 통일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재차 드러내었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통일부 폐지는 없다”라고 밝힌 바 있지만, 근래에 통일부가 인력 80명 감축을 포함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과거 ‘MB정부 시즌2’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데쟈뷔(deja vu) 느낌이 든다. 하필이면 인력감축 인원도 왜 80명이 되어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남북관계 정상화, 국민과 함께하는 통일 준비’를 하려면 오히려 인력증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제대로 일하려면 24시간도 부족하다”라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주의에 기반하여 남북간 공동 이익을 실현하고, 분야별 남북경제협력 로드맵을 제시하여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는 등 앞으로 통일부가 할 일은 산적해 있다. 통일부 본연의 업무는 남북통일과 대북정책 수립, 북한과 이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외 정세분석, 통일교육 및 홍보, 북한 인권을 포함한 인도적 문제 해결, 탈북민 정착 지원 등이다. 최근 대북 강경론자인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임명된 것과 관련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통일부 본연의 업무수행은 물론, 윤 대통령이 공약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 현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거대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담론을 떠나 2018년 이후 중단된 남북이산가족 상봉이라도 추진하여 이산가족들의 이별의 고통을 덜어주고, 통한의 세월을 눈물로 보낸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어야 할 것이다. 연로한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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