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나교 수피아미술관 기획실장·미술학 박사
방나교 수피아미술관 기획실장·미술학 박사

스위스 출신의 알베르토 자코메티(Albrto Giacometti 1901~1966)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조각가이다. 자코메티는 천재 화가 피카소가 유일하게 인정하고 질투한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이자 조각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자코메티의 조각상은 대부분 인물이 주소재이고 기존의 조각가들이 인체를 역동적이고 실제의 인간 모습보다 미화하여 표현하는 것과 달리, 그는 쓰러질 듯이 앙상하고 빈껍데기만 남은 나약한 인간의 몸을 형상화해 감상자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자코메티의 작업 방식은 뼈대에 찰흙과 같은 매체를 붙여 근육과 살을 채우며 형태를 찾아가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붙인 살을 조금씩 떼어내고 덜어내는 기법을 활용해 작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느낄 수 있게 한다. 자코메티는 젊은 시절 목격한 지인의 죽음과 1차 세계대전 등을 겪으면서 허약한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도시 속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실존과 본질에 대해 고뇌하게 된다. 특히 전쟁이 끝난 후 그의 고뇌가 작품의 영감이 되어 오롯이 조각에 투영되는데 이를 대변하는 작품이 <걸어가는 사람>이다. 이는 매일 바쁘게 어디론가 쉼 없이 반복해서 걸어가는 현대인의 공허한 내면을 표현한 작품으로, 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사람의 형상을 앙상한 철사처럼 가늘고 약한 모습으로 표현해 외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의 본질만을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자코메티는 볼품없이 빈약한 얼굴형상에 눈과 시선 표현을 신중히 했다. ‘눈빛이 살아 있는 한 죽지 않은 것’이라는 표현처럼 그는 생과 죽음의 뚜렷한 경계는 시선이며 영원히 살아남는 유일한 것도 시선이라고 인식하였다. 그의 조각에 나타난 인물의 시선이 불안하고 공허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살아 있음을 완연히 표현한 시선을 조각에 각인함으로써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완성한다.

걸어가는 사람(L‘Homme qui marche) 1961, 청동
걸어가는 사람(L‘Homme qui marche) 1961, 청동

자코메티는 한때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이 인간을 헤치고 괴롭히는 사회 부조리와 불합리로 인해서 절망의 심연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걸어가는 사람>을 통해 인간이 걷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 계속 걸어나가야 한다. 인간이 걸어 다닐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 무게감을 잃어버리고 가볍게 걸을 수 있다”라는 자코메티의 언급처럼, 그는 조각의 인물에서 외형의 불필요한 살을 덜어낸 가벼움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끌어내고 있다.

인간에게서 걷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인간이 태어나 첫걸음마를 뗄 때부터 인류가 처음 달 표면에 걸음을 옮겼을 때,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처음 밟은 등정의 걸음에 이르기까지 인류사는 인간이 걸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걸음이 전하는 감동이 이처럼 지대한데 하루하루 치열하게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걸음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현재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고뇌의 무게를 덜어내고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하루하루 본질에 충실한 삶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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