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진 소설가
임수진 소설가

한국이 늙어간다. 2040년이 지나면 일본을 제치고 가장 늙은 나라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작년 말 고령화율이 17.5%였단 기사를 보면서 미래를 잠깐 상상해 보았다. 우리 부모님은 각기 일흔두 살과 여든아홉까지 사셨다. 어머니는 노인성 질환 이외에 큰 질병 없이 아흔 가까이 사셨으니 장수한 셈이다.

어머니를 닮았으면 나도 오래 살 확률이 높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오래 살게 되면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할 텐데 미래사회는 자녀의 부양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다 할 질병이 없던 어머니도 여든이 지나면서 가족의 돌봄이 필요했고 마지막 5여 년은 기력이 다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쉰둥이인 나는 일찍부터 부모의 노쇠를 경험했다. 나이 든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날까 봐 이마를 손가락으로 문지르곤 했다. 주름만 없애면 오래 살 것 같았다. 때로는 부모님이 주무실 때 가만히 그 앞으로 다가가 코밑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바람이 나와야 안심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내 곁에 오래 머물렀고 우리 손을 빌려야 할 상황이 생길 때면 “이젠 네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다.” “내가 얼른 죽어야지.”라고 말했지만, 처방받은 약을 시간 맞춰 개수까지 세어가며 복용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였다.

인간은 누구나 때가 되면 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을 유예하고 싶어 한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심에 클레오파트라는 우유에 목욕하고 진시황은 불로초에 욕심을 냈다. 최근에는 백만장자들이 회춘 사업에 적극적이다. 미국인 사업가 브라이언 존슨은 매일 의료진의 특별 관리를 받고 복용하는 영양보충제만도 6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매년 200만 달러를 젊음을 되돌리는 비용으로 쓰며 열일곱 살 아들의 피를 수혈받기까지 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과거와 달리 만성질환 관리가 잘 되는 것도 기대수명을 높인다. 흔히 노쇠의 전 단계를 보려면 걸음걸이를 보라고 한다. 보행 속도가 느려지고 자세에 변화가 왔다면 노년의 몸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다. 인간의 몸은 신비하다. 가꾸고 손질하고 공을 들인 만큼 달라진다. 나이보다 2, 30년은 젊어 보이는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은 운동, 충분한 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미스터 트롯’에 출전했던 김용필 가수를 우연히 광화문 야외무대에서 본 적이 있다. 세련되고 잘 생겼고 노래도 잘한다. 그는 마흔 중반에 안정적인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하고 싶었던 가수에 도전했다.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실력을 인정받은 그를 최백호 가수는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한 번 넘어졌을 뿐”이라며 격려했다.

모델 중 세계 최고령인 카르멘 델로레피체는 아흔한 살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현역 모델로 활동 중인 그녀는 “나이가 들어 열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열정이 식어 나이가 드는 것”이라며 100세가 넘어서도 모델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누구나 공평하게 먹으니까 억울할 것도 없다. 하지만 노화의 속도와 폭은 개인차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남성이 80.5세이고 여성이 86.5로 OECD 평균을 조금 웃돈다. 과학계에서는 노화의 원인인 텔로미어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어쩌면 미래사회는 나이는 계속 먹지만 노화는 멈추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자녀들이 부모의 부재에 슬퍼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도 충분히 건강할 미래는, 젊어서부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나이를 걸림돌이라고 여기지 않고 도전한 자에겐 분명 축복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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