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얼마 전 정치판에서 모(某) 국회의원이 당 대표의 체포안 가결을 두고 “저열하고 비루한 협잡”이라 했고, 이를 두고 모 앵커는 “저열하고 비루한 게 따로 있다. 속셈이 드러난 단식 정치에다 악성 팬 덤 정치, 양심의 자유 짓밟기까지, 비루한 시대 비루한 정치판이 혐오스럽다 못해 참담하다”라고 ‘비루(鄙陋)’라는 말을 썼다. 이렇게 ‘비루(鄙陋)’라는 말이 마구 쓰이는 세상이 되었다.

비(鄙)는 ‘더럽다’하는 뜻보다 속어로 ‘다랍다’의 뜻이 강하다. 루(陋)는 ‘좁다, 천하다’ 뜻이 강하다. 그래서 ‘비루(鄙陋)하다’의 뜻은 ‘천하고 너절하다’ 뜻이다.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추잡한”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사람의 행색이나 복장을 비유기보다는 행동이나 성격 등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외면이 아니라 내면, 즉 인간성이 더러울 때 쓰는 말이다. 비루하다는 인간 자체의 평가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다.

행색이나 복장을 말할 때는 ‘남루(襤褸)하다’라는 말을 사용하여 “낡아서 해지고 너저분한”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인간의 겉모습이 형편이 어려워 보인다. 삶이 피곤해 보인다. 초라해 보인다. 나쁜 놈, 죽일 놈이 아니라 겉모습이 꾀죄죄하다는 뜻이다. ‘쯧쯧’ 혀가 차지는, 동정심이 가는 모습이다.

‘비루(鄙陋)먹다’라는 말이 있다. 주로 개나 말 같은 동물에 많이 쓰인다. 피부가 헐고 털이 빠지고, 곰팡이가 피고 여윈 상태의 동물에 쓰이는 말이다. ‘비루먹은 개’, ‘비루먹은 말’ 등으로 쓰인다. 내면이 아니라 외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굶은 모습, 초라한 모습이다.

초나라 왕이 천리마를 고를 줄 아는 백락(伯樂)에게 명마를 구해오라 했는데, 말을 찾아 나섰던 백락이 소금장수의 마차와 마주쳤다. 소금 마차를 끌던 말은 비쩍 마르고 비루먹어 아무 짝에 쓸모없어 보였는데, 백락은 천리마의 자질을 알아보았다. 백락에 의해 비루먹은 말이 천리마로 발탁되게 된다. 자질이 뛰어나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아 비루먹은 말로 산 것이다.

그래서 ‘비루하다’하는 말은 내면을, 본질을 아주 저급하게 만들어 버리는 모멸감을 주는 표현이지만, ‘비루먹었다’라는 표현은 외모는 추하고 너절해 보여도 그 속에 특별함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목욕하고 옷 갈아입으면 탈바꿈된다. 비루먹은 모습의 이하응이 당당한 대원군이 되었다.

사람의 삶 중에 진짜의 삶은 어떤 것인가? 진짜의 삶은 나만의 의지대로, 나만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세월을 뒤돌아보면 어릴 적에는 부모님에게, 청년기에는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진정 내가 원하고 희망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서 살아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예쁜 배우자를 만나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잘사는 삶이 아니다. 노년이 되어 인생은 덧없고 헛된 것이라 말하는 삶을 살아왔다면 가짜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진짜의 삶이 아니더라도 비루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 힘없는 사람을 돕고, 어려운 사람을 구한다는 명분을 걸고 자신을 챙기는 부끄러운 짓도 하지 않아야 한다. 잘살고 못살고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의 삶을 살고, 가짜의 삶을 살고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비루하게 살지는 않아야 한다.

혹간 가다가 비루먹은 삶은 살아도 될 것 같다. 능력 부족으로 가지런하지 않은 삶은 동정은 받아도 남을 해치지 않는다. 비루먹은 것처럼 삶이 매끄럽지 않아도 다듬어 갈 수 있다. 비루먹은 말(馬)은 콩을 먹이면 고친다. 비루먹어도 비루하게는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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