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합의체 심리 ‘올스톱’…대법관 제청 미뤄지면 2명 추가 공백
법관들 “처참한 심정”, “정치가 사법 덮어 수치스러운 날”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는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낙마 이후 두번째 사례로, 35년 만의 대법원장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에서 부결됨에 따라 ‘대법원장 공백 사태’의 장기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새 후보자를 다시 지명하고 인사검증 절차를 마치기까지 최소 한 달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여야의 대립이 극심해 상황을 조기에 수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회적 갈등을 사법적으로 해결하는 대법원의 기능이 마비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법원 내부에서는 수장 부재에 따른 혼란과 재판 지연 등 국민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법원의 존재 이유로 꼽히는 전원합의체 심리·판결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전원합의체는 사안이 까다롭고 대법관의 의견이 갈려 소부에서 다룰 수 없을 때나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해야 할 때 소집된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는 총 5건이 계류 중이다.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일실수입’(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을 한 달에 며칠치로 계산할지에 관한 소송, 마사지업을 의료법상 안마에서 제외해 비시각장애인에게도 허용할지 여부가 쟁점이 된 형사 사건 등이 남아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주재해 선고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견해가 많다.

심리와 판결에 관여하는 대법관이 재판장 포함 12명으로 짝수가 돼 찬성·반대 숫자가 같아지는 ‘가부동수’(可否同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전원합의체 심리가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사건을 회부하기도 사실상 어렵다. 어떤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야 하는지 대법관들이 회의를 열어 논의하는 기능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동성부부의 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할지,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단체 관계자를 처벌하는 게 정당한지가 쟁점이 된 사건들이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전원합의체 결론이 늦어지면 비슷한 쟁점을 다루는 하급심도 적극적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아 연쇄적으로 재판 지연이 심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법원장의 빈 자리가 내년 1월1일 퇴임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의 공백으로 이어져 상고심 재판이 지체되는 것도 기정사실이 됐다.

통상 대법관 인선 절차는 천거와 검증, 제청까지 약 3개월이 소요된다. 늦어도 이달 중순에는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외에는 직접 재판에 관여하지 않지만 대법관들은 연간 1인당 4천건씩 쏟아지는 상고심 재판을 심리·판결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재판을 할 수 없는 대법원장 권한대행에 더해 대법관 2명이 상고심 재판에서 빠지면 사실상 9명의 재판관이 12명 몫을 해야 하는 셈이다.

사법행정 업무에 정통한 한 고등법원 판사는 “신임 대법관 인선이 제때 되지 않으면 상당히 큰 문제”라며 “대법원에 가뜩이나 사건이 많은데 적체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법관 정기 인사도 통상 11월, 12월부터 준비가 시작돼야 하는데 결정권자가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라며 “인사 대상자들도 불안해하면서 본인들 업무에 집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법관들은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며 재판과 사법행정 업무에 현실적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어느 정도 예견했지만 처참한 마음”이라며 “가장 정치적이지 않아야 할 기관의 장을 임명하는 일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지연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원 구성원으로서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당혹스럽다”며 “‘정치가 사법을 덮는다’는 생각이 든다. 사법부로선 수치스러운 날”이라고 침통해했다.

판사들은 빠르게 현재 상황이 일단락되지 않으면 이미 비판이 많은 재판 지연 문제가 더 심각해져 결국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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