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읽기 표지.
‘이어령 읽기’가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어령 읽기’는 문학평론가 김성곤이 문학, 문화, 문명, 예술, 인생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어령과 나눈 대화의 기록으로, 이어령 선생이 암 투병 중일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한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해 완성한 이어령론이다.

김성곤에게 멘토와도 같았던 이어령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의연한 태도로 성찰과 혜안이 깃든 비교문화론, 인류문명론, 동서문학론을 펼쳤다.

각 주제에 대한 이어령의 말과 그 말에 대한 김성곤의 의견이 더해지며 완성된 ‘이어령론’이자 ‘이어령이 남긴 말들에 대한 보고서’인 이 책은 넓은 의미의 대화를 지향한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가 저자의 자리에 서서 이어령의 말을 독해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길어올릴 수 있다.

평생에 걸쳐 자신의 문학적 유산을 가꿔 온 이어령이 변화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주옥같은 메시지들은 일상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본질에 대한 질문을 자주 잊고 사는 우리에게 드물고도 귀한 대화의 희열을 선사할 것이다.

대화의 시작은 이어령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이다. 이어령은 문학을 일컬어 “유서가 아니라 유언과도 같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문학은 문서로 쓰인 논리적인 학문이 아니다. 문학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비상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로 하는 유언과도 같은 문학을 다만 ‘공부’하고 있는 이 시대의 경직된 학습 태도는 문학에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분은 유서를 공부하고 있어요. 유서는 문구나 자구 하나 하나를 고치고 도장 찍는 것인데, 문학이나 인문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어령의 문학론에 대한 김성곤의 응답은 우리 마음속의 대답이기도 하다. 작가란 누구이고 문학의 의미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은 정의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로 뻗어 나간다.

일찍이 ‘디지로그’라는 책을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에 주목했던 이어령은 인공지능 시대

를 살아가는 우리 태도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어령은 인공지능 시대의 시작을 말이 가축화되고 기계화되는 과정에 비유한다. 말이 등장할 시기에 말과 경쟁하는 사람, 말 위에 올라타는 사람, 말을 가축으로 만드는 사람, 짐을 풀어서 내리는 사람 등이 있었듯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 기술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며, 그때 우리는 문명에 끌려가지 말고 문명에 올라타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성곤 평론가는 영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인공지능과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인간 삶에 이용되면서도 오용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할 지점들을 참조한다. 인공지능이라는 전대미문의 변화 역시 긴 역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대처하지 못할 것이 없다.

이어령 교수는 생명 자본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는 물질 자본주의이고, 증식하지 않는 것을 증식하는 것처럼 하는 유사 캐피털리즘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생명 자본은 무엇일까. 교육, 문화, 문학 같은 것들이 바로 생명 자본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은 무한대의 소비와 생산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비용이 예정되거나 한정된 것이 아니며 과잉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공기와 같고 물과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한 김성곤 교수의 해석은 생명 자본의 현실화와 가능성에 더 힘을 실어 준다.

끊임없이 증식하는 자본처럼 교양과 학식과 고매한 인격으로 불어나는 생명이라면, 그것은 분명 가치 있는 생명 자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그것이다.

두 사람의 문학 비평가가 나누는 대화답게 이 책은 문학을 문화와 문명과 연결하는 빛나는 통찰들로 가득하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청산별곡」의 진짜 의미에서부터 『파친코』 이면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이어령 교수와 김성곤 평론가의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이 빚어낸 이 책은 이어령 교수가 남기고 간 문학적, 문화적, 문명사적 유언과도 같다. 이제 독자인 우리가 유서가 아니라 유언을 듣는 태도로 그가 남긴 말들을 곱씹어볼 차례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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