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된 소나무·당산나무 '고사 위기'…주민들 속 타들어가
마을 곳곳에 침투…푸르던 산지마다 황갈색으로 변색
경북도 "집단 감염지역에는 활엽수립 조성 계획 검토"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동배리의 한 야산에 소나무들이 재선충병에 감염되면서 고사돼 잎이 갈색으로 변한 모습.유병탁 기자.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마을 경관은 물론 마을 지킴이인 당산나무가 고사되고 있어 답답한 심정입니다”

포항시 남구 호미반도에는 올해 들어 소나무재선충병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17일 경북일보 취재진이 포항시 남구 해안도로인 929번 지방도를 따라 동해면에서 호미곶면까지 차량을 타고 이동해 봤다.

푸르던 산지마다 소나무들이 재선충병에 집단 감염돼 황갈색으로 변해버렸다.

소나무재선충은 크기 1mm 내외의 선충으로 솔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을 통해 이동하며, 감염된 소나무는 재선충이 급속하게 증식하면서 수분과 양분의 이동을 방해해 100%로 고사하게 된다.

재선충병은 산지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침투해 있었다.

마을에 형성된 소나무 숲은 물론 동해면 마산리에는 윗대부터 마을 수호신으로 여겨왔던 수백 년 된 당산나무, 호미곶면 대동배 1리에는 마을의 명물인 해안가 갯바위에 뿌리내린 100여 년 된 소나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재선충병은 별다른 치료제가 없어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 마산리 당산나무가 최근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돼 잎사귀들이 누렇게 변하고 있다.유병탁 기자.
대동배 1리에서 만난 김창준(81) 할아버지는 “일평생 이곳에서 살았는데 소나무재선충이 이렇게 심한 적은 처음”이라며 “해안가 갯바위에 있는 소나무는 100년이 넘었는데 재선충병에 걸려 잎이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특히, 마산리 주민들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불리며 매년 음력 9월 9일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지내던 당산나무이기 때문이다.

이재우(69) 마산리 이장은 “지난달 말쯤 당산나무를 보니 누렇게 변해 있었고, 너무 늦게 알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오는 23일이 당산제인 날인데”라고 한숨만 내쉬었다.

소나무재선충은 포항 외에도 안동댐과 임하댐 인근, 성주, 고령 등 경북 곳곳에서 활개하고 있었다.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동배 1리 해안가 갯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돼 잎사귀들이 누렇게 변하고 있다.유병탁 기자.
경북도에 따르면 올해 현재까지 도내에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 피해 고사목은 51만 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최근 5년(2019년~2023년)간 가장 많은 수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도 내에서 발생한 연도별 소나무재선충 피해 고사목 현황을 보면 2019년 13만 본, 2020년 11만 본, 2021년 11만 본, 2022년 47만 본이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발병률이 급증하면서 경북이 전국 15개 광역시·도 중 소나무재선충병에 가장 많이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대상목 발생 현황을 보면 작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경북이 90만6483본으로 전국(219만 774본) 발생량 중 약 41%를 차지했으며, 그다음으로는 경남 60만9862본, 울산 9만1649본, 대구 8만8414본, 경기 8만8395본, 제주 7만5839본 등 순이었다.

이에 경북도는 올해 방제 예산으로 지난해(282억830만 원)보다 2배 이상 증가한 649억 원을 투입했으나 재선충병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문가들은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의 원인 중 하나로 환경적 요인을 꼽았다.

박선주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고사목이 증가하는 등 선충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했다”며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로 침엽수에서 활엽수로 수종을 변경해 선충이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방제에 힘쓰고 있으나 도내 곳곳에서 재선충병이 확산하고 있어 예산 부족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호미곶면 등 집단 감염지역에는 활엽수림으로 조성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병탁 기자
유병탁 yu1697@kyongbuk.com

포항 남구지역, 교육, 교통, 군부대, 사회단체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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