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 문학대전

김제정 그림.

동백이 기어코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잎이 진다. 눈물방울이 땅을 울린다. 하얀 눈 위에 떨어져 있는 저것은 날갯짓이 내려 둔 빨간 눈물이다. 살아있음의 소명을 다한 생의 흔적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 파문이 타원을 그리며 번져나간다. 절을 감싸고 있던 고요함이 잔잔한 울림을 전해온다. 여린 입김에 공기가 요동친다. 어느새 온기를 되찾은 날숨과 들숨은 찬 겨울이 가고 봄이 도래하고 있음을 일러온다. 투명한 눈(雪) 알갱이를 멍하니 눈에 담고 섰다가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

퍼렇고 허옇다. 정수리 위에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서 붉고 푸른 날갯짓을 본다. 짹짹거리며 귀를 지나가는 울림은 날개 달린 생에서 나온 것일 터. 소란하고 산만한 움직임이 살아있음을 일러온다. 한 번의 퍼덕임은 한 번의 숨이거늘 날개의 크기가 운신의 폭을 결정하기라도 하는지 부산스레 움직이는데도 활공 거리는 길지 않다. 그래, 안다.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자유로운 춤사위를 펼쳐 보이며 하늘을 무대로 만드는 참새떼의 군무를 멍하니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점점이 제 자리를 확보해가는 새들을 보며 더는 날개를 펼 수 없게 된 너를 떠올린다. 그 밤, 열쇠고리가 되어 눈에 들어온 너를 말이다.

절을 드나든 지 오십 일쯤을 넘기고 있을 때였다. 저녁 초입, 절 문을 넘어섰다. 벌건 해가 땅을 붉디붉게 물들이고 있는 시간, 노을에 잠긴 대웅전은 한 점 수채화가 되어 눈을 채워왔다. 용 문양 걸쇠를 빼고 문을 열어 대웅전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향과 초, 나무 냄새가 버무려져 올라왔다. 켜켜이 쌓여가는 밤이 먹 냄새를 뱉어내고 있는지 발바닥에서부터 어둠의 먹이 스며들었다. 붓에 먹물을 묻히듯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짧은 계절의 밤이 어느 때보다 더 적막하게 뼛속 깊이 스며들어왔다. 얼음처럼 차게 식은 바닥이 느슨해진 마음을 매질했다. 차가움 속에서 느끼는 타는 듯한 뜨거움. 그 가운데 서서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초에 불을 붙이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슴 앞에 손을 맞대 두고 눈을 내리깔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불경을 외며 ‘없음’을 곱씹었다. 초점이 흐려지던 시야에 작고 둥근 무엇이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갈색 뭉치에 마음이 미끄러졌다. 시선을 코끝에 모으고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었다. 바람 소리를 빛으로 담아내는 촛불이 요동치는 내 속을 천천히 매만져주었다.

기도를 마치고 내민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마음에 금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야를 채워 든 것은 분명 열쇠고리였다. 바닥에 놓여 있어야 할 것은 새가 아니라 열쇠고리여야 했다. 손이 요술이라도 부린 듯 눈앞의 그것은 장신구가 아닌 진짜 새가 되어 놓여 있었다. 생과 죽음 사이에 새가 누워있었다. 생명을 가진 것이 죽음을 향해 수렴해 가는 일은 자연의 섭리거늘 숨을 거두고 누운 바닥의 날(飛) 것이 가슴을 굳게 했다. 생의 끝이 죽비가 되어 어깨를 내려쳤다.

너는 어이하여 이곳에 이르러 마지막을 맞았고 나는 왜 네 끝을 처음으로 본 자가 되었는가. 흔들리는 촛불과 번지는 어둠과 방망이질하는 심장이 먹을 머금은 붓이 되어 가슴에 담겼다. 붓이 속을 물들여왔다. 이 일을 어찌하나. 혼잣말을 되뇌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까마득해지는 앞을 물리며 허둥지둥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때 손에 들어온 것은 의자였다. 불상 앞에 누운 네가 발가벗겨진 사람인 것 같아서, 그 죽음이 시리고 아려서, 뭐라도 덮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영문을 알 수 없이 파란 의자를 이불 삼아 내려두었다.

길은 멀고 밤은 길었다. 집으로 온 후 잠을 설쳤다. 죽음이 눈에 밟혀서였다. 비상하지 못하는 새와의 조우가 꿈인지 생시인지. 밤이 새도록 뒤척이다가 몽롱한 정신으로 아침을 맞았다. 방안까지 스며든 어둠의 농묵(濃墨)이 창 위에 새 그림자를 그려 두고 있었다. 창에 새겨진 검은 형체는 날갯짓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이하여 나는 네가 잠들 곳을 마련해 두지 않은 채 도망치듯 절을 빠져나와 버린 것이었을까. 후회가 종아리를 후려쳤다.

먹을 머금은 듯한 눈물을 삼키며 절을 찾았다. 새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또한 연(緣)이리라. 네 마지막은 내 손을 거쳐 가야 했던 것이리라. 하얀 종이를 접어 들고 멀찍이 팔을 내밀었다. 눈을 질끈 감고 죽음을 걷어 올렸다. 웅덩이처럼 깊고 철근처럼 묵직할 줄 알았는데 얕고 가벼웠다. 종잇장보다 더 가벼운 무게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죽음이 손 위에 있는데 그게 진짜인 것 같지 않은 연유는 무엇인지. 숨을 고르며 죽음에서 낭만을 느낀 나를 마주했다. 늘어진 새는 울지 않는데 어쩐지 산 자의 한숨만 깊어 갔다.

대웅전을 나와 양지(陽地)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가 좋을까. 어디에 눕혀두어야 네 마지막을 빛으로 배웅할 수 있을까. 볕이 잘 드는 땅, 담묵(淡墨) 같은 볕 좋은 땅을 찾아야 하는데 적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장지를 찾아 헤매며 절을 서성였다. 그동안 가볍디가볍던 너는 무게를 더해갔다. 그렇게 새는 묵향을 벗어내며 죽음에 무게를 더하는 것이 죽은 자의 시간이 아닌, 산자의 그것이라는 깨우침을 주고 있었다.

동백나무 아래 안식처를 마련했다. 민둥민둥한 바닥이 아리고 서글퍼 한 손 가득 마른 낙엽을 모아왔다. 추위도 느끼지 못하게 된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마른 잎을 그러모았다. 그리고는 앞서 생을 다한 잎을 네 위에 내려두었다. 부처의 품을 찾아든 네 죽음이 시리지 않았으면, 네가 갈 그 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하고 앞서 물기가 가신 잎을 벗이랍시고 곁에 놓아두었다.

흙으로 돌아간 새에게서 평평한 땅에 대한 기대가 허상이었고 욕심이었음을 읽어낸다. 무위도식에 화를 내고 죽을 만큼 노력하고도 하나에조차 이르지 못하는 박복함에 억울해하고 나를 가운데 둔 날 선 말들을 원망하고. 살아가는 일은 굽이굽이 이어지는 울퉁불퉁함을 메우는 일이었다. 한 점의 티끌도 남기지 않는 말끔한 삶을 살아내고자 한 것은 욕심이었다. 돌아보니 견뎌낸 시간에 비례해 생이 남루해지는 듯 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것은 삶에 대한 어리석은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백이 작별을 고하기 시작하는 계절,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요란하게 울린다. 어딘가에 이르러 날개를 펼치고 있을 너를 눈앞에 그려낸다. 네가 남긴 소리 없는 말을 곱씹는다. 죽음에서 묵직함을 느끼는 것은 산 자의 붙듦에서 비롯된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무겁디무거우나 돌아서는 일에는 무게가 없다. 삶은 어쩌면 가벼워지기 위해 무게를 더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열쇠고리를 위해 장지를 찾아 헤매는 이는 없다. 인사(人事)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날갯짓하던 새에게는 살아있었음과의 작별을 위한 의식이 필요하다. 가벼워지는 것은 마지막 숨을 내려놓는 그 날의 몫으로 남기더라도 오늘을 마주하고 있는 자에게는 죽음을 배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무덤을 다지며 다짐한다.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라면 생이 내려놓는 어그러짐의 무게를 감당해 내리라고. 살아내기 위해 뻗은 뿌리가 살을 파고들고 뼈를 깎아내린다 해도 그것으로 꽃 한 송이를 남길 수 있다면 견뎌낼 것이라고. 그리하여 네가 그랬듯이 나 또한 기꺼이 누군가가 뿌리내릴 수 있는 터전으로 나를 내어 줄 것이라고.

동백을 앞두고 너의 안녕을 빈다. 빨간 꽃이 길을 내고 있을 저 너머 어딘가에서 새의 지저귐을 불러들인다. 간밤에 조용히 작별을 고하고 세상을 등진 생들을 고이 맞아 달라며 손을 흔들어 본다. 우두둑. 동백이 진다. 푸드덕. 새가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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