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등짝을 훑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
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서 뿜어나오는 광채 같다면
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멀쩡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누가 왔나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 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나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감상] 평산책방 가을 음악회 ‘가을, 가을하네요’가 지난 21일 토요일 저녁, 평산마을 회관 앞마당에서 열렸다. 이병률, 장석남, 손택수, 박소란 시인과 콰르텟엑스 현악 4중주, 김가람 피아니스트, 박종성 하모니시스트, 강산에 밴드 등이 출연하여 시월의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사람이 온다”, 책방으로, 사람이 모인다. 평산 근처로 이사 가고 싶다는 당신 덕분에 웃는다. 포항에도 ‘책방 수북’이 생겨서 귀한 인연들이 모이고 있다.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책방으로 온다. 아름다운 가을, 우리, 책방에서 만나자. 책방에 가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긴다. <시인 김현욱>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