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야생동물 구조" vs 구청 "유해동물 살처분" 혼선

지난달 28일 오전 8시 6분께 포항시 북구 청하면 서정리 일원에서 물에 빠진 고라니 모습. 고라니는 소방당국 구조 이후 자연에 방생됐다. 경북일보 독자 제공
고라니와 인간 사이 비극.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종으로 보호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국내에선 ‘골칫덩이’인 동물. 고라니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포착되면서도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 분석에 따른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1일 포항북부소방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전 8시 6분께 포항시 북구 청하면 서정리 일원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우물에 빠져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고라니는 물에 허우적대면서 지나가던 시민에 발견됐다.

시민 A씨(50대)는 가장 먼저 접근할 수 있는 119에 신고했지만 소방당국 반응은 냉랭했다.

유해조수생물이기에 구조가 안된다는 것.

수차례 설득 끝에서야 소방대원들이 나섰고 고라니는 들것에 실려 구조된 뒤 자연으로 방생됐다.

이 과정에서 소방당국과 북구청 간의 혼선은 덤이었다.

일반적으로 소방은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입장이고 북구청은 유해동물을 살처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라니의 전국 개체 수는 약 70만 마리로 추산된다.

지난달 28일 오전 8시 6분께 포항시 북구 청하면 서정리 일원에서 물에 빠진 고라니가 소방당국 등에 의해 구조되는 모습. 경북일보 독자 제공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발표한 2022년 야생동물 실태조사에선 경북지역 기준 산악 1㎢당 8.8마리, 구릉 1㎢당 9.5마리가 서식 중이다.

과거 1970년~1980년까지만 해도 고라니 숫자는 많지 않았으나 2000년 초부터 폭발적 증가 이후 현재 개체 수가 안정됐다는 것이 관계기관 관측이다.

고라니가 주로 서식하는 하천, 습지, 저지대, 농지 가장자리 등은 인간의 개발행위가 쉬워 쉽사리 파괴된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보금자리를 뺏긴 고라니는 도로를 건너다 ‘로드킬’을 당하고 농가 등에 출현하다가 신고를 받은 유해조수구제단에 의해 사살된다.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야생 고라니의 사적 포획 및 채취가 원천 금지됐지만 보호구역 지정 등 구체적인 보호법령이 별도 존재치 않고 환경부로부터 여전한 ‘유해조수’로 지정돼 있다.

괴리가 생긴 셈이다.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우선, 고라니 주요 서식지조차 면밀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실정을 꼬집었다.

정확한 개체 수 파악에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부 지역에서만 살고 있는 고라니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 수집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호랑이, 표범, 늑대 등 상위 포식자들이 절멸한 상태에서 사실상 고라니 개체 수를 자연 조절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인간들의 인위적 조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한 전문가는 “지금으로선 이상적인 대책은 전국 고라니 개체에 대한 적정 밀도를 파악한 후 그에 따른 관리가 중요하다”며 “과학적 개체 분석을 통해 모니터링 관리를 거쳐 개체 수 감소를 선택할지 보존 정책으로 전환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고라니는 해마다 5~6월 새끼를 낳고 겨울철에 짝짓기를 한다. 겨울잠을 자지 않아 추위에도 활동한다.

황영우 기자
황영우 기자 hyw@kyongbuk.com

포항 북구지역, 노동, 세관, 해수청, 사회단체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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