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 문학대전 시 동상

차회분 약력
경남 합천 출생
시집<흐린 날의 고흐>

왕버들나무 아래로 말간 도랑물이 흘렀다. 동네 아지매들이 텅텅 방망이를 두들겨 빨래를 빨고 출렁다리 아래에서는 초등학교에 다닐 즈음의 아이들이 물놀이를 한다고 시끄럽다. 내 나이 열서너 살의 여름은 여름 햇살만큼 따가웠지만 감잎처럼 반질거렸고 등꽃 같은 보랏빛이었다. 소낙비 내리는 날 마당으로 꽂히는 빗발을 보면 괜스레 몸이 아팠다.

묵을 쑨다. 할아버지는 아궁이 불을 때고 할머니는 부뚜막에 올라 큰 주걱으로 묵을 젓는다. 묵을 젓는 일이 강에서 노를 젓는 일과 거의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헐렁헐렁 주걱이 잘나가지만 갈수록 뻑뻑해져서 온몸을 실어야 한다, 노를 젓는 것처럼 주걱을 저어대는 할머니 엉덩이가 들었다 놓인다. 상체에 힘이 쓸리는지 팔을 앞으로 쭉 뻗는다, 다시 어르고 달래는 그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지 저고리 적삼이 땀에 다 젖는다. 주걱으로 묵을 떠 위에서 주르륵 내리는데 그것은 할머니만의 감별 법이다. 걸쭉해진 묵을 바가지로 떠 삼베 보자기 깐 함지에 담아 굳기를 기다린다. 탱글탱글한 도토리묵은 겨울 새벽 아침보다 먼저 입맛을 다시게 했던 별식이었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 초록 원피스를 입었던 아이가 오래된 사진 속에서 웃는다.

우리는 자주 천정을 보고 누웠다. 천정에는 오래된 신문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미연이 와 나는 할 일 없이 단어 찾기를 했다. 대통령도 찾고 바다도 찾고 골목도 찾고 아이들도 찾았다. 누가 먼저 찾는지 내기도 했다. 찾은 것들을 상자에 담아 두었다. 그 상자를 마당에 묻었다. 지금도 그 상자 속에 그 단어들이 담겨 있을까. 창녕 아지매가 돌아가시고 그 집이 빈집이 되어 부동산에 매물로 나왔다. 그 집 마당에 우물물이 달았다는 걸 누가 기억하고 있을까. 아득한 그리움이라 쓴다.

저녁이 걸어온다. 한 아름의 수수꽃다리같이 걸어온다. 일방통행 그 많은 잔가지는 어디에 두고 저녁이 걸어온다. 펄럭이던 깃발은 찢어져 바람이 샌다. 열무김치 같은 저녁이 걸어온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은 저녁, 딸랑딸랑 방울 소리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과수원의 사과와 개울가 수양버들 함께 떠난 발걸음 소리 들리는 계산대 영수증보다 더 빠른 저녁이 걸어온다.

대명 유수지 갈대숲을 걷고 온 저녁이다. 뜨겁던 여름내 유수지는 갈대꽃만 빗어대고 있었을까. 온통 갈대다. 갈대가 바람을 휘어잡느라 이리저리 몸을 굴린다. 사는 것도 다 때가 있다고 했었다. 그 무더위를 견딘 그 시간이 이 가을빛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사진을 찍어대며 갈대밭에서 잘 놀다가 온 날이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틈틈이 나를 일으켜 준 원이문 가족이 생각난다.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사업의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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