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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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 새벽
쇳가루 펑펑 뛰는 작업장에서
페인트 칠을 한다
보다 쾌적한 작업환경을 위해
낼 모레 높으신 분의
환경검열에 죽어나지 않기 위해
달리 무슨 이유도 없이

엄습하는 졸음과 소음
한치도 쉼 없는 작업에
밤 내내 만신창이 된 꺾어진 몸뚱이로
떠지지 않는 눈은 차라리 감고
비틀비틀
칠하고
또 칠하고
내 젊음이 꿈꿀 수 없는 새벽을
짓뭉개듯 칠하고
잠깐 졸음에 흥건히 쏟은
흰색 페인트의 절규를 긁어모으며
눈물 같은 웃음도
웃음 같은 눈물도
뿌릴 수 없는 새벽

어느 작업장에선
이 땅의 푸석한 노동의 얼굴들이
밟히고 또 밟히면서도
머지않은 아침을 기다리는 피맺힌 호흡뿌리며
일어나고들 있겠지

[감상] 1989년 발간한 『포항문학』 9호에 노동문학 시 특집으로 실린 12명의 작품 중에 한 편이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포항의 한 회사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시인의 생생한 체험이지만, 2023년의 ‘작업장’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숙련공이 소멸하고 제조업은 무너지고,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은 유예되고 ‘노란봉투법’은 기약할 수 없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죽어 나가고 실습 현장에서는 ‘다음 소희’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일하다 죽지 않게!” 도대체 여기가 전쟁터인가?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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