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진 소설가
임수진 소설가

지난 2일 생리의학상 발표를 시작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모두 결정되었다. 다가오는 12월이면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시상식이 열린다. 이 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에 스웨덴 국왕이 직접 수여한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평화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스톡홀름에서 개최되는데 나눠서 시상하는 이유는 노벨이 죽고 난 후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분리된 까닭이다.

북유럽 여행 때 스웨덴 시청사에 들른 적이 있다. 쿵스홀맨섬 동쪽 끝에 자리한 이 건물은 건축가 라구나르 오스토베리가 설계하였는데 15년에 걸쳐 완공한 후 그는, “나는 시청사 건물에 영혼을 전부 쏟아부었다. 그래서 지금은 영혼이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삶의 철학이기도 한 이곳은 800만 개의 검붉은 벽돌과 1,900만 개에 가까운 금도금 모자이크로 눈부시게 화려하고 고풍스럽다.

노벨과 과학자들의 역사적 발자취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게 이채롭다. 누군가의 영혼과 맞바꾼 건물이 북유럽 최고의 여행지 중 한곳이 되고 블루홀과 골든홀의 섬세한 문양도 마음을 끌지만, 무엇보다 이곳에서 노벨상과 기념 만찬이 열린다는 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청사 탑에 올라가면 스톡홀름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지고 밖으로 나오면 공원과 도시 사이로 강물이 흐른다.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며 노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노벨상 중에서도 특히 문학상에 관심이 많다. 올해 그 주인공은 노르웨이 출신의 극작가인 욘 포세다.

‘긴장과 침묵’이 그를 수식하는 단어이다. 특히 수상자 발표 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대표작 『멜랑콜리아』는 인물 중심의 독백체로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복잡한 내면세계를 간결하고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평이다. 욘 포세만이 낼 수 있는 언어의 확장성이 읽는 맛을 더한다고나 할까.

노벨상이 제정될 때 일부 사람들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노벨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 역시 개발품이 채굴이나 건설 사업에만 쓰인 게 아니어서 회의감이 없지 않았다. 사실 노벨은 전쟁을 싫어했고 혼자 있을 때는 시와 소설 쓰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유품에서 소설 습작품이 발견되었다는 글을 읽고서야 노벨상에 문학이 들어간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노벨은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공학을 배웠고 폭약과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받아 형제 모두가 손재주가 뛰어났다. 함께 일하던 막냇동생을 폭발 사고로 잃는 아픔도 겪었다. 이후 그는 더 강력하지만 안전한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다.

영화 오펜하이머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가 원자폭탄을 개발한 원래의 목적은 독일 나치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일본에 쓰였다. 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은 욕심이 과했다. 종전을 원했던 미국은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결과적으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만든 무기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영화 속 천재 과학자인 오펜하이머의 고뇌에 찬 딜레마를 보면서 노벨 또한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 역시 다이너마이트 같은 강력한 무기가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처음의 목적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여러 가능성 중에 쓰임의 목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닐 것이다, 그게 살면서 우리가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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