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저장용량 등 이견 못 좁히고 상임위 처리 불발
원내지도부에 협상 일임…'자동 폐기' 우려 목소리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산업협회 등 505개 기업 및 단체가 지난 1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영구 처분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안’ 통과가 또다시 불발됐다.

22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고준위특별법’ 등을 우선 순번으로 두고 심의했지만, 저장시설 규모 등을 두고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이에 여야는 당 지도부에 협상을 일임하기로 했다.

‘고준위특별법’은 원자력발전소 내에 임시저장 중인 고준위 방폐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중간저장ㆍ영구처분시설(방폐장)을 설치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고준위 방폐물은 원전 부지 내에 마련된 임시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원전 최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고준위 방폐물 처분 절차와 방식, 일정 등을 규정한 특별법을 마련하겠다는 국정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정부는 2030년부터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이 차례로 포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가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21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안이 사실상 자동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안은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이 각각 제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 홍익표 의원도 제정안과 유사한 취지의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재로선 원자력발전소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외부에 저장하거나 영구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 못한다. 이에 핵폐기물 발생량 전체를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다.

이미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을 운영하기 위해 영구 처분시설이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여야에서 각각 발의된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안의 세부 내용에도 공통점이 적지 않다.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려면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회 산업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 10차례에 걸친 논의를 거듭했지만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용량이 대표적인 쟁점이었다.

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 안은 부지 내 저장시설의 저장 용량을 ‘원자로 운영 허가 기간의 발생 예측량’으로 제한했다. 향후 원전 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다.

반면 민주당 홍익표·김성환 의원 안은 ‘설계 수명 기간의 발생 예측량’으로 제한했다. 원전의 최초 운영 허가 때 심사했던 설계 수명이 종료되면 저장시설 용량도 늘릴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현 정부의 ‘탈원전 폐기’와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 사이에서 여야의 기 싸움이 이어지면 고준위 방폐물 영구 처분시설 마련에도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에 원자력 업계와 학계에서는 “한빛, 한울, 고리 등 경수로 원전 내의 고준위 보관시설은 2030년부터 포화상태에 도달한다”며 “보관시설을 추가하지 않으면 원전 운영에 곤란을 겪고, 원전 수출에도 막대한 지장이 발생한다”고 영구처분장 준비를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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