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첫 도입 일반계 고교 평준화
학업 의욕 꺾고 자퇴·전학 유도
교육계 "도교육청 개선 의지 부족"
도 "2024년 고교 평준화 평가 용역"

박용선 경북도의원이 지난 5월 포항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교평준화 제도’ 여론조사. 박용선 경북도의원 제공.
“포항지역 고교평준화에 대한 문제점이 산적해 있는데 교육당국은 무관심한 것인지 무능한 것인지 아무런 대책 없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

30여 년간 포항지역 교육현장에 몸 담고 있는 한 교직원의 하소연이다.

학력 수준 하향, 인재 유출 등의 문제로 포항지역에서는 고교평준화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경북교육청은 고교평준화가 시행된 지 15년 동안 제도에 대한 개선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무능한 행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포항은 지난 2008년부터 경북에서 유일하게 일반계고 평준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경북교육청이 지역 내 과열된 고교 진학을 막고 학력 격차를 줄이는 등의 목적으로 도입했으며, 현재 총 14개교의 일반계 고등학교가 평준화돼 있다.

이처럼 도입 취지는 좋았지만, 안일한 행정으로 포항교육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 포항 교육계의 중론이다.

포항 교육계에 따르면 제도가 시행되면서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도출돼 학생과 학부모 등이 수년째 개선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교육청에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손 놓고 방관해 지금은 포항교육의 앞날을 걱정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원서접수 시 학생들이 원하는 고등학교 순(남학생 10지망·여학생 9지망까지)으로 작성해 교육청에 제출하지만, 무작위 추첨으로 진학이 결정돼 1지망을 선택한 학교에 입학할 확률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타 지역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선지망한 학교에 배정되지 못하고 후지망 학교에 진학할 경우, 실망감과 억울함 등으로 학업에 대한 의욕이 상실해 자퇴 및 인근 지역으로 전학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학력 수준도 갈수록 하향되고 있다는 것.

평준화로 성적과 무관하게 일반계고에 입학할 수 있어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 증가하는 등 인재 양성에 어려움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교사들의 의욕도 점차 사라져 교육의 질이 낮아지는 등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이에 학교장들은 개선책을 찾기 위해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포항의 A고등학교 교장은 “고등학교에서 1지망을 선택한 학생 30% 정도를 우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는 “학생들이 우선 지명한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넓히고, 학교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낮아진 학력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시민들도 고교평준화 제도를 폐지 및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용선 경북도의회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5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정보리서치에 의뢰해 포항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해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폐지 및 개선‘이 75.6%(폐지 37.2%·개선 38.4%), 현행 유지 17.1%, 모름 7.3%로 집계됐다.

고교평준화 정책 인식에 대해서는 ’긍정적‘ 46.9%, 부정적 45.9%, 모름 7.2%로 긍정과 부정이 1%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포항향토청년회가 지난 6월 북구 중앙상가와 죽도시장 일원에서 시민 846명을 대상으로 현장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살펴봐도 ‘개선’이 817명(96.57%)으로 ‘유지’ 29명(3.43%)보다 월등히 높았다.

또, 이들이 조사한 최근 5년(2018년~2022년) 간 경북도 내 주요 도시(포항, 경주, 안동, 구미)를 대표하는 일반계 6개 고교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 평균 합격률을 보면 경주고 23.46%, 안동고 17.07%, 구미고 13.14%, 구미여고 10.44%, 포항고 9.23%, 포항여고 8.62% 순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 7일 경북도의회에서 진행한 도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됐다.

이날 손희권 의원(포항, 국민의힘)은 포항 고교평준화에 대해 단 한 번의 추첨으로 컴퓨터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시스템과 학력의 하향평준화 등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도교육청에서 지금껏 포항의 고교평준화에 대해 제대로 된 효과검증이 없었으며, 더 나은 정책을 만들려는 의지도 부족했다”고 비난했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늦은 감은 있지만, 내년 상반기에 포항지역 고교평준화 평가를 위한 연구 용역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유병탁 기자
유병탁 yu1697@kyongbuk.com

포항 남구지역, 교육, 교통, 군부대, 사회단체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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