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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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윤동주 시인의 시 ‘바람이 불어’ 전문(全文)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시인의 유명한 ‘서시(序詩)’처럼 이 시에도 자기 성찰과 반성의 정서가 담겨 있다.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흐르는데 자신은 굳은 반석과 언덕 위에 멈춰 서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불어’에는 암울했던 시대에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성찰하고 깊이 마음을 다지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While the wind keeps blowing, My feet stand upon a rock)/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While the river keeps flowing, My feet stand upon a hill)”

찰스 3세가 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바람이 불어‘의 마지막 두 연을 영어로 낭송했다. 찰스 3세는 이 시를 인용하면서 “한국이 놀라울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도중에도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는 것을 해방 직전 불운하게 작고한 시인이 (이 시에서) 예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설명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대한 시대에 맞는 적절한 해석이었다.

찰스 3세의 시담(詩談)에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를 인용 “영국 나의 벗이여, 영원히 늙지 않으리라”라 건배사로 화답했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 이후 잊고 있었던 윤동주 시를 다시 읽어보게 한 찰스 3세의 환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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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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