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1982년 6월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납본필증’ 없이 사전 배포했다고 하여
이틀간 안기부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날 때였다. 퇴계로에서부터 트럭 하나가 우
리 뒤를 따라붙더니 중앙청 문공부까지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수사관들과 함
께 어느 국장 방으로 갔더니 백지를 내밀며 ‘재산포기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
트럭에는 시중 서점에서 압수한 1만여 권의 시집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원효로 경신제책에선 나와 수사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형과 함께 시
집 1만 권이 분쇄되었는데 분쇄기를 직접 잡은 김 상무의 엄지손가락 없는 오
른손이 마구 떨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김 상무에게서 폐휴지값 5만 8천 원이
나왔으니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감상] 요즘 화제인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 극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141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관객은 일어설 줄 몰랐다.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극장을 나오며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장군(정우성)의 소신을 되뇌었다.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1980년대는 출판물의 압수와 판매금지, 출판인의 불법연행과 같은 출판 탄압이 만연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의 신상정보와 주요 행적을 수집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는 결국 군사 반란을 주도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지켜내자.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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