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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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기다리는 잔들이 있었다
손님이 잔을 골라 오면 그 잔에 주문한 음료를 담아주는
카페였다

손잡이는 손을 기다리는 일로 하루를 보낼 테지
그런 하루는 참 영원 같겠다, 생각하며

잔을 고른다
우릴수록 붉어지는 차가 무늬 없는 투명한 잔에 담겨 나온다

내가 고른 잔이 나를 보여준다는 사실
두렵지만

선택했기 때문에 양손으로 감싸 쥘 수 있는 잔이 생긴 것이다
손이 기억할 수 있는 크기가 생긴 것이다

다른 잔을 골랐더라면 어땠을까
안이 하나도 비치지 않는 사기그릇이었다면

비밀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

발맘발맘이란 그럴 때 필요한 말이겠지
헥타르와 아르의 차이는 알지만
불에 탄 코알라의 얼굴은 들여다보지 못할 때
삼각형의 수심은 알아도
마음의 수심은 구할 줄 모를 때

카나리아는 우는 소리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는 새가 되었다고 한다

당신은 무엇을 담는 사람인가요? 물어오는 풍경 앞에서
나의 규모를 생각한다

[감상] “손님이 잔을 골라 오면 그 잔에 주문한 음료를 담아주는 카페”에서 시인은 ‘잔’이 되었다가 ‘손잡이’가 되었다가 ‘손’이 되었다가 ‘코알라’와 ‘카나리아’가 되었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시인은 “무늬 없는 투명한 잔”을 고르며 “선택했기 때문에 양손으로 감싸 쥘 수 있는 잔이 생긴 것”과 “내가 고른 잔이 나를 보여준다는 사실”과 “다른 잔을 골랐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넘어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담는 사람인가요?”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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