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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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가 옮았다 까마귀 몇 마리가 쥐 한 마리를 사이좋게 찢어먹는 걸 구경하
다가 아무 일 없는 길거리에 아무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성스러운 강물에 두
손을 적시다가 모를 일이지만 풍경의 어디선가

빈대가 옮았다 빈대는 안 보이고 빈대는 안 들리고 빈대는 안 병들고 빈대는
오직 물고 물어서 없애려 할수록 물어뜯어서 남몰래 옆구리를 긁으며 나는 빈
대가 사는 커다란 빈대가 되어간다

비탈길을 마구 굴러가는 수박처럼 나는 내 몸이 무서워지고 굴러가는 것도
멈출 것도 무서워지고

공중에 가만히 멈춰 있는 새처럼 그 새가 필사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는 사
실처럼 제자리인 것 같은 풍경이 실은 온 힘을 다해 부서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모래들이 있다

빈대는 나 대신 나를 물어 살고 빈대는 나를 물어 나 대신 내 몸을 발견한다
빈대가 옳았다 풍경을 구경하다가

[감상] 요즘 전국이 빈대 방역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 빈대의 44%가 고시원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빈대는 국어사전에 ‘빈대 붙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 ‘빈집의 빈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와 같은 예문으로 등장한다. “빈대가 옮았다”로 시작해 “빈대가 옳았다”로 마무리 짓기까지 이미지의 변주가 거침없으면서도 섬세하다. “나는 빈대가 사는 커다란 빈대”, “빈대는 나를 물어 나 대신 내 몸을 발견한다”와 같은 시구를 읽다 보면 뭐가 빈대고 누가 빈대인지 의문이 든다. 빈대를 완전 박멸하기는 힘들 것이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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