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순 경일대 교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임한순 경일대 교수·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햇살이 투명하다. 겨울 창가로 드는 햇살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허리를 봉긋 세우고 양지쪽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가 평화를 대변한다. 게으름이 허락되는 햇살 좋은 겨울 오후다.

12월. 그렇게 선정적으로 몸을 태우던 가을 산도 생존을 위한 ‘비우기’에 들어갔다. 찬바람이 악역을 맡는다. 잔인하게 잎을 ‘우수수’ 훑어 내린 뒤 어디론가 몰아간다.

부처님 설법이 겨울 햇살에 녹아든다.

“나의 가르침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다음과 같다. ‘나’, ‘내 것’으로 시작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라.” 법정 스님이 즐겨 사용해 익숙해진 ‘무소유’다. 스님은 폐암의 병증이 깊어지자 연명 치료를 거부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내게 선물을 준 이들은 자신의 선물을 모두 찾아가라.” ‘가는 길 모두 내려놓고 가볍게 가게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예수님도 전교를 하러 먼 길 떠나는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의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마태오 복음) 한 벌 이상의 옷도 허락하지 않은 철저한 무소유다.

운명적 사랑을 다룬 영화 ‘닥터 지바고’. 끝없이 펼쳐진 설원, 내달리는 마차와 그 배경으로 이어지는 자작나무숲. 작은 나뭇잎 하나 허락되지 않는다. 흰 몸뚱이만으로 찬 겨울을 견디는 애처로운 나목. 그 나목이 ‘닥터 지바고’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한다.

활엽수들이 1년에 한 번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겸허한 시간, 겨울. 무소유란 무거운 화두를 건넌 뒤 봄을 맞으라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이다. 브렌델의 피아노와 피셔 디스카우의 묵직한 음색에 실린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이 음악과 창가 겨울 햇살만은 갖고 싶다.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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