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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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세월이 지났구나

밝았던 얼굴, 낭랑했던 음성
눈부셨던 둘레에

헛것 가득 찬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

벼락, 천둥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
젖은 신발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

모래도 헛것이고, 티끌도 헛것이고
흰 살결도, 검은 눈물도, 꽃도, 안개도

절집도, 성당도, 학교도, 국가도
아직 오지 않은 천년도

모두 헛것이었구나
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

[감상] 번 아웃과 공황으로 힘든 시절에 혼자 온갖 망상을 지었다가 부셨다가 세웠다가 눕혔다가 당겼다가 밀었다가 불었다가 터뜨렸다가… 혼자서 별의별 짓을 다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 마음 안에서 나를 세워두고 내가 원맨쇼를 하고 있었구나! 금강경에 “분별, 망상 이러한 것들은 모두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으니 “일체 허망함을 알고 휘둘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모두 헛것’이니까 ‘허무’가 아니라 ‘인연’대로 살 수 있다. 만족하며 살 수 있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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